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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견제와 균형의 2차 방어선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1주일도 남지 않았다. 예단하긴 어렵지만 2018년 지방선거나 지난해 총선과는 결과가 사뭇 다를 것 같다. 대통령 지지율도 눈에 띄게 하락 추세다. 무엇보다 청년층 여론이 예사롭지 않다. 이처럼 민심의 풍향이 바뀐 배경으로 집값 폭등과 공직자의 땅 투기 의혹이 지목된다. 최근 사건일수록 대중 인식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근접 편의(偏倚)’ 탓이리라. 네거티브 캠페인이 막바지까지 기승을 부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러나 길게 보면 2017년 촛불집회의 시대정신이었던 협치(協治)의 실종이 오늘의 민심 이반을 불렀다. 특히 21대 총선 후 여권의 과속 독주에 대한 견제 심리가 임계점을 넘어선 듯하다. 막무가내의 졸속 과잉 입법, 노골적인 편 가르기와 파렴치한 ‘내로남불’에 대한 실망과 비판 기류가 거세다. 대선 핵심 구호였던 “사람이 먼저다”는 “우리 편이 먼저다”로 빗대어져 입에 오르내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반면교사다. 그는 1년 전만 해도 낙승이 예상되던 대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많은 이는 코로나19 대응 실패와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빚은 인종 갈등을 결정타로 본다. 합리적 추론이다. 하지만 출구조사 결과를 살피면 색다른 시사점도 얻을 수 있다. 예상과 달리 트럼프는 소수인종으로부터 2016년보다 더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의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득표율은 3~5% 포인트 오른 각각 12%, 32%, 34%였다.

트럼프의 패인은 오히려 중도층 득표율 하락(41%에서 34%)과 우군이었던 교외 거주 백인의 변심이었다. 그는 거친 입담, 과시형 성품, 좌충우돌의 강경 노선 탓에 각료와 참모까지 적으로 만들었다. 베트남전 포로이자 3대에 걸친 해군 장교 출신으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을 조롱해 텃밭 애리조나주에서도 패배를 자초했다.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 등의 어설픈 정책을 밀어붙이자 상당수 공화당원마저 등을 돌렸다. 대선은 졌지만 함께 치른 양원 선거에서 공화당은 득표율이 직전보다 상승했고 하원 의석도 12석이나 늘어난 사실이 그 방증이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는 명저 ‘법의 정신’에서 권력 분립이야말로 ‘견제와 균형’에 의해 독재를 차단하는 자유의 정수라고 설파했다. 그는 입법권과 행정권이 일체가 되거나 사법권이 독립되지 않으면 폭정이 고개를 들 것으로 걱정했다. 로마 공화정과 영국 입헌군주정에 착안한 그의 주장은 미국 헌법에 처음 실린 뒤 온 세계로 퍼졌다.

그런데 프랑스 대혁명 후 급진 자코뱅파가 전권을 장악했듯이 권력 분립이 허물어지면 어떻게 될까. 프랑스 고등사회과학원 피에르 마노 교수에 따르면 몽테스키외는 여론과 선거를 2차 방어선으로 여겼다. ‘오만하고 탐욕적인 다수’의 횡포가 이어지면 여당 지지자조차 약자인 야당을 응원하는 인간 본성이 발현된다. 이처럼 적이 동지로 뒤바뀌는 정치의 역동성 덕분에 견제와 균형이 복원된다는 것이다. 선거는 아니지만 자코뱅파도 공포의 단두대 정치에 위협을 느낀 국민공회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선거를 거쳐도 권력이 여전히 한쪽에 몰리는 최악의 상황은 없을까. 독일은 나치 시절 집단 최면 상태에서 저지른 부끄러운 역사를 되밟지 않으려고 승자 독식을 아예 제도로 차단했다. 교조·원리주의와 극단 노선을 배제하고 포용과 타협이 정착하도록 어떤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없게 못 박았다. 따라서 독일에선 압도적 지지를 받는 제1당이라도 홀로 내각을 구성할 수 없고, 다른 정당과 연립정부를 꾸려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과격한 정책을 순화하고 민의를 골고루 반영하는 ‘너그러운 다수’가 형성된다. 야당에도 활로와 퇴로가 열려 갈등이 줄어든다.

미국 정치사학자 제이 코스트는 공감대가 넓고 강하며 오랠수록 공익에 더 충실한 정책인 만큼 공화정의 요체는 ‘합의의 탐색’이라고 집약했다. 그에 따르면 공권력에 대한 복잡다기한 견제 장치는 설익고 치우친 외곬 정책을 걸러내는 안전망이다. 코스트는 이런 신념을 내세워 독불장군 트럼프가 2016년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자 항의의 표시로 공화당을 탈퇴했다.

요컨대 견제와 균형은 굳건한 합의를 원만하게 끌어내는 입헌 공화정의 주춧돌이다. 그 1차 방어선인 권력 분립이 허술하면 2차 방어선인 유권자의 투표권이라도 제대로 행사해야 하지 않을까.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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