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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원샷’ 초고가 약이 던진 숙제


다섯 살 미국 소녀 에밀리 화이트헤드에게 병마가 찾아온 건 2010년 5월이었다. 온몸에 든 멍이 사라지지 않아 병원을 찾았고 혈액암인 급성림프구성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1년 반의 치료에도 나아지지 않자 의료진은 “몇 주밖에 살지 못한다”며 호스피스 시설이나 집으로 갈 것을 권유했다.

에밀리의 부모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2012년 4월 필라델피아아동병원에서 항암 신약의 임상시험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등록했다. 기존 항암제와는 완전 다른 방식으로 제조되고 작동되는 ‘카티(CAR-T) 치료제’의 임상시험 1호를 자원한 것이다. 이전까지 한 번도 사람에게 적용된 적 없었던 만큼 두려움도 컸지만 주저하지 않았다. 딸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간절함이 통했을까. 에밀리의 피에 흐르던 암세포가 투약 두 달 만에 말끔히 사라졌다. 죽음을 앞뒀던 에밀리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고 있다. 카티 치료제가 ‘기적의 항암제’로 불리게 된 배경이다.

에밀리 가족에게 한 줄기 빛이 돼 준 세계 첫 카티 치료제 ‘킴리아’가 최근 한국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다. 이 약을 고대해 온 말기 혈액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희소식이다. 대부분 기존 항암 치료에 실패했거나 재발해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 여명 6개월의 시한부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 조만간 한국판 에밀리의 기적이 나오기를 소망해 본다.

그런데 환자와 가족들의 얼굴엔 여전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비싼 약값 때문이다. 카티 치료제는 환자 자신의 혈액에서 빼낸 면역세포(T세포)에 암세포를 인지해 공격하도록 하는 유전자(CAR)를 발현시켜 다시 넣어주는 개인 맞춤형 약이다. 평생 한 번만 투여하는 ‘원샷(one shot)’ 방식이다. 이런 제조 과정의 특수성 때문에 4억~5억원대의 큰돈을 내야 치료받을 수 있다. 건강보험 같은 국가 지원 체계 없이 환자와 가족이 감당하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다.

1회 비용으로는 비쌀 수 있으나 단 한 번 투여로 효과가 평생 지속될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보면 비용 대비 효과적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가정에서 당장 몇 억원씩 마련하기는 쉽지 않다. 돈이 없어 눈앞에 약을 두고도 쓰지 못할 수 있다. 경제력에 따른 의료 불평등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따라서 이번에 원샷 초고가 의약품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문제와 환자 지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져 합리적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킴리아 같은 혁신적 유전자·세포치료제는 앞으로 계속 등장할 것이다. 치료 범위도 혈액암뿐 아니라 유방암 폐암 등 고형암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암 외에도 첨단 기술이 접목된 희귀난치병·중증질환 치료제가 활발히 개발 중인데, 대부분 원샷에 수억원, 수십억원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급여화되면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 일각에선 몇 백만원짜리 약도 비급여가 많은데 몇 백명 살리자고 수억원짜리 약을 먼저 급여화하는 것은 불평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정된 건보 재정으로 살림을 꾸리는 보건 당국의 고심이 깊을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생명과 직결되는 병이고 효과가 입증된 약이라면 신속히 급여 품목으로 등재해 환자들이 최대한 빨리 쓸 수 있게 해주는 게 맞는다고 본다. 다만 건보 재정이 국민이 낸 돈인 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해 보인다. 머리를 맞대면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선 ‘임시 약가’를 적용해 급여화하고 나중에 확정 약가의 차액만큼 정산하거나, 급여화하되 환자 본인부담률을 조정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약사도 약 판매로 얻는 이익이 큰 만큼 환자 부담을 일정 분담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국내 첫 원샷 초고가 약의 등장으로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졌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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