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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시론] 갈 길 먼 장애인 사역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소수의 신학생과 목회자 초년병이 장애인 사역의 미래를 초교파적으로 의논하고자 머리를 맞댄 적이 있다. 필자도 그중 하나였다. 모인 이들의 면면도 대단치 않았고, 전망도 불투명했으며, 알아주는 이도 없는 조촐한 모임이었다. 사실 그 모임은 틀을 갖추지도 않았고 지속되지도 않았다. 당시 현실을 말한다면 우리 중 한 명은 소속 교단이 ‘장애인은 제사장이 될 수 없다’는 성서 해석을 내세워 목사 안수를 거부해 만년 전도사 신세였다. 장애인 사역을 교역(ministry)으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근거가 될 장애인신학도 부재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과 한 세대 전 일이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이들은 각기 흩어졌지만 나름대로 열정을 품었고, 그 열정은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열매를 맺었다.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윗돌을 뚫는다고 했나. 장애인 사역의 변화는 미세하지만 이어졌다. 대다수는 낌새도 느끼지 못했지만 관심 있는 자의 눈에는 들어왔다. 필자만 해도 근 20년 국내외를 오가면서 귀국할 때마다 변화를 목격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 대천의 ‘장애인 단체 간사 교육’에 수십명이, 2000년대 말 양평의 ‘전국 교회 장애인부 교사 수련회’에 수백명이, 2010년대 중반 김해의 ‘부산·경남 지역 교회 장애인부 교사 수련회’에 500여명이 모였다. 작고 느린 흐름이 점점 크고 빨라졌다. 물론 장애인 사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곧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다. 사회 특히 교회가 이날을 기념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교회와 장애인은 내외적으로 관계가 깊다. 몇 가지만 짚어보자. 먼저 내적인 면이다. 첫째, 교회는 장애인과 관련된 변화에 선구자 역할을 했다. 특히 한국교회 선교 초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한 구호 및 복구 시기를 손꼽을 수 있다. 교회 변화는 사회 변화로 이어졌고, 장애인 분야의 사회 지도자도 배출했다. 그러나 교회는 전반적으로 교회 내적 과제에 몰두하는 구심적 경향을 보였고, 기존 성과에 만족했으며, 운동 초기의 혁신성을 상실해갔다. 오히려 장애인 고용 등 일부 영역에서는 사회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개혁가의 조로 현상이라고나 할까. 둘째, 교회는 장애인 사역을 교회의 핵심 교역으로 발전시키지 못했고, 교회 인식 변화의 중심인 장애인신학 발전도 미진하다. 장애인신학은 장애인 사역의 의미를 홍보하고, 교회 체질 변화를 주도하며, 사회 개혁을 위한 사회와의 공조를 촉구해야 하는데 말이다.

외적인 면도 살펴보자. 첫째, 장애가 복지와 연결되면서 사회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 그러나 장애는 영적 측면도 있기에, 기독교는 장애를 심신상관적(psychosomatic) 차원을 넘어 영적 측면을 포함하는 전인적(wholistic)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최근 복지정책은 복지를 국가가 전담하는 복지국가론에서 사회의 다자가 분담하는 복지다원주의(welfare pluralism)로 전환하는 추세다. 따라서 교회의 역할이 더욱 요구된다.

둘째, 장애가 고령화와 연결되면서 장애의 보편성이 부각되고 있다. 최근 ‘○○난민’ ‘○○약자’ 등의 용어도 유행한다. 바로 인간의 개인적·사회적 위약성(vulnerability)에 대한 자각인 셈이다. 장애인이 편하면 모두가 편하고, 사회 수준은 약자를 대하는 태도가 그 지표라는 말이 있다. 장애인 당사자로 인권에 관심 있는 어느 목회자가 말했듯이 “장애인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모두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꿔본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사회이고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다시 던질 때가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온다. 새 생명을 맞이하는 부활절과 더불어.

안교성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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