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가리사니

[가리사니] 읍소 릴레이

양민철 정치부 기자


최근 연예인 박수홍씨가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쏟았다. 정확히 말하면 영상이 아닌 댓글을 읽다가 눈시울을 붉혔다. 댓글은 대체로 ‘안녕하세요’로 시작됐다. 과거 박씨와 짧게 인연을 맺은 방청객이나 막내 작가, 외주 스태프들이었다.

“1993년 방청객으로 뵀었어요. ‘저랑 같이 사진 찍어요’라고 친절하게 말씀해 주신 것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어요. 힘내세요.” “기억 못하시겠지만 20년 전 스태프였어요. 추운데 고생 많다고 따뜻한 음료와 웃어주시던 얼굴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박씨가 20년간 후원해 온 보육원 사람들도 댓글을 달았다. “저희에게 마음을 나눠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힘내세요.”

박씨는 30년간 방송 생활로 모은 돈 100억원을 놓고 친형 부부와 송사를 벌이고 있다. 가정사에 돈까지 얽힌 일을 제3자가 뭐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박씨가 이런 사태를 미리 예상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친절한 미소와 따뜻한 배려를 건넨 것은 아닐 것이다. 계산된 행동이라기엔 지나치게 소박하고 무의미하다. 그럴 요량이었다면 더 든든하고 실제 도움을 줄 만한 사람에게 했을 것이다. 그저 박씨가 평소 만나는 사람, 특히 본인보다 약하고 낮은 위치의 사람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이번 일로 드러났을 뿐이다. 영상에 달린 미담 댓글이 2만개를 넘자 네티즌은 ‘미담 맛집’이란 별명을 달았다. 서로 싸우고 할퀴는 댓글들에 지쳐있던 터라 코끝이 찡해졌다.

박씨를 향한 미담 릴레이를 보며 마음 한편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읍소 릴레이’가 떠올랐다. 선거를 앞둔 민주당은 연일 “잘못했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러나 열성 지지층을 제외하곤 돕겠다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달까지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에는 ‘돕겠다’는 사람보다 ‘한번 혼나봐라’는 사람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석에서 만난 한 의원은 “민심이 차갑게 식었다. 뭘 해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180석을 몰아줬던 민심이 1년 만에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도 인정했듯이 지난 1년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연속이었다. 여성 인권을 지킨다는 사람들이 ‘피해 호소인’이란 말을 꺼내고, 임대차 3법을 만든 의원들은 임차보증금을 올렸다. 내로남불을 혁파하겠다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당 잘못으로 치러지는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가 상황이 달라지자 후보를 내놓고는, 상대 정당 후보를 향해 ‘거짓말을 했으니 약속대로 사퇴하라’고 공세를 퍼붓고 있다. 이쯤 되면 내로남불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게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

특히 청년층을 대할 때는 도와 달라는 사람의 태도가 맞는가 싶다. 여당 후보와 소속 의원들은 20대 지지율이 낮게 나오자 “역사 경험치가 낮은 탓”이라고 했다. 극단적 여권 지지자들은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20대에 대해 ‘돌대가리’라고 표현하며 아예 취업길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했다.

사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여권과 그 지지자들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국민에 대해 포용의 자세를 보인 적이 있었나. 부동산 정책과 검찰 개혁,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까지. 자신들 성향에 맞지 않거나 정책에 불리한 목소리를 내면 적폐로 몰며 조리돌림에 몰두했을 뿐이다. 이제와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에 민심이 풀릴 리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에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어려울 때 도와 달라고 하려면 평소 잘해야 한다. 힘든 시기를 겪는 박씨에게 위로가 쏟아지는 건 그가 제일 잘 나갈 때 주변을 챙겼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탁하지 않아도 힘내라는 말이 쇄도하는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재차 이길 수도 있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아니까. 그러나 이기든 지든 지금의 간절한 마음을 잊는다면 다음 선거는 분명 더 어려울 것이다. 사람은 잘 나가든 못 나가든 한결 같아야 한다.

양민철 정치부 기자 liste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