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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정의로운’ 대한민국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사회학과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 3년11개월 전에 선포된 이 정부의 국가 비전이다. 국민을 섬기는 정부,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 거라고 했다.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 상식대로 해야 이득을 보는 세상을 꿈꿀 거라고 했다. 이 신천지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권력기관이 민주적으로 개혁되고, 소득이 늘어 경제가 꽃피는, 모두가 복지를 누리고, 남북 간 화해 협력이 넘실대는 한국판 에덴동산인 셈이다. 사악한 감염병이 창궐해도 K방역이 가동돼 단숨에 바이러스도 차단할 수 있다는 안내문도 공지됐다.

누군가가 선악과를 따먹어서일까. 동산을 뛰놀던 사람들의 눈이 이내 밝아졌다. 검찰 개혁에 권력 연장의 의지가, 소득주도성장에 시장경제에 대한 무지가, 남북 평화에 인권 경시가 자리 잡은 걸 알아챘다. 늘어난 일자리의 대부분은 단기 알바고, 한 해 늘어난 청년 임대주택은 서울에서 고작 949채며, 뿌려진 재난지원금은 사각지대를 잘도 비껴간 현실도 한눈에 확인했다. 24번의 부동산 대책이 오히려 집값을 천정부지로 올렸고, 이내 계층사다리가 닫히자 분노가 치솟고 박탈감이 넘치는 것을 목도했다. 이제 이 신천지는 부패와 투기가 넘쳐나고, 특권과 반칙이 판을 치는 정의롭지 않은 한낮 가공의 땅임이 분명하다는 확신이 든다.

애초부터 정의로운 대한민국은 일장춘몽이었을지 모른다. 스스로 민주주의와 정의의 사도로 자처했던 자들이 촛불에 취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바뀐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집권층의 심성에 똬리를 틀었다. 경쟁자를 적으로 내몰고 낙인찍기가 일상화되면서 집단 간 갈등이 격화되고 포용은 외면됐다. 검찰이, 사법부가, 기업인이, 부동산 소유자가, 또 확진자와 시위 참가자가 악마화되고 타협과 소통은 고갈됐다. 정의의 수호자라는 선민의식에 취해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내 눈의 들보는 못 보는 불행이 반복됐다. 조국가의 사모펀드와 입시비리가, 추미애 휘하 법무부의 무리한 윤석열 징계처분이, 또 김상조의 전세 보증금 14% 인상이 그랬다.

비록 성비위로 부산시장이 쫓겨나고, 서울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성평등 실현에선 우리만한 사람들이 없다고, 그러니 당헌 바꿔 후보 내는 일이야 당연한 거라고 확신하는 순간 지지층 이탈은 시작됐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호소인’과 ‘피해자’ 사이를 오가며 피가 마르는 동안 여당 정치인들은 박원순 향수에 빠져 피해자의 절망을 또다시 외면했다. 아시타비가 또다시 세상을 떠돈 시간.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찰떡같이 믿었던 20대 여성들의 좌절과 이탈은 이렇게 합리적으로 설명된다. 아무리 레전드 여성 정치인이 여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도, 무너진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거란 Z세대 여성들의 상황 판단에 준엄함마저 느껴진다.

2030세대의 촉각은 공정과 정의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이들의 60%가 야권 시장 후보들에게 지지의 손짓을 보냈을 때 이 정부가 내세운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비전은 이미 그 효력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다. 조국 가족의 ‘부모 찬스’에 좌절하고, ‘인국공 사태’로 펜을 꺾었던 그들, ‘공부 못해 못 와놓고 왜 꼬투리 잡나’며 조롱하는 LH 추정 직원의 글을 마주하며 정치적 응징의 기회를 노릴 것은 당연할 터. 상식대로 하면 불이익당하고, 특권과 반칙 없인 생존 불가하다는 깨달음은 어쩌면 부동산 가격 폭등이 계층상승 사다리를 끊었을 때 느꼈던 좌절감보다 더 고통스러웠을지 모른다.

권력자들이 거울 보며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쁜지’ 묻는 동안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인권보고서는 한국의 인권문제와 부패가 추하다고 고발했다. 대북전단 불법화부터 조국 가족의 부패수사, 윤미향 의원의 횡령·배임혐의 기소, 고 박원순, 오거돈의 성비위까지 내로남불을 발동해 숨기고 항변하던 대표 사례들이 전 세계에 민낯으로 공개됐다. K방역에 우쭐해 백신 확보에 한눈판 사이 열강과 개도국들은 백신 민족주의를 앞세워 한국을 외딴섬으로 몰아넣었다. 백신 접종률 세계 111위! 비축된 백신이 적으니 하루에 2만여명씩 찔끔찔끔 주사 놓는 나라. 아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지금 이 나라에, 에덴동산이 들어설 곳은 애초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틀 후 선거 결과가 자못 궁금한 이유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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