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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우아한 저항, 보이콧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지난해 2월 매일유업으로 고객의 편지 한 통이 왔다. 그는 요구르트 엔요에 붙어 있는 빨대가 환경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 없앨 수 없느냐고 했다. 그동안 마신 엔요에 붙어 있던 빨대를 모아서 동봉했다. 빨대를 없애라는 ‘경고’ 같은 ‘제안’이었다. 매일유업은 답장을 보냈다. ‘빨대를 쓰지 않아도 마시기 편리한 포장재를 연구하는 중이고, 빨대를 제공하는 방식도 재검토하겠다.’ 그로부터 5개월 지나 엔요에서 빨대가 사라졌다.

판매수익 일부를 미혼모 등에 후원하는 화장품 브랜드 ‘시타’는 소셜미디어 공간에서 입소문을 제대로 탔다. 시타는 최근 플라스틱 튜브를 쓰는 상품을 생산하지 않고 친환경 소재로 대체하겠다는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게 잠재적 소비를 더 끌어들였다. ‘착한 소비’를 실천하기 원하는 이들의 입맛에 맞아떨어졌다.

과거 손해를 감수하고 불만을 참는 게 익숙했던 소비자는 멸종했다. 모바일 기기로 무장하고 네트워크에서 연대하는 새로운 ‘소비 인류’가 빈자리를 채우고 있다. 네트워크에서 생각과 가치를 공유하며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소비 권력’은 한데 뭉친다. 그들은 기업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실행을 요구하거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상품에 환호한다. 강도를 높여 보이콧(boycott)으로 불리는 불매운동도 벌인다. 2019년 7월 일본이 핵심 부품·소재를 한국으로 수출하지 못하게 막자, 반대급부로 시작한 ‘노(NO) 재팬’(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대표적이다. 보이콧은 경제·산업 이슈뿐만 아니라 정치나 사회 분야에서 부당행위에 대항해 벌이는 집단적 거부 운동을 폭넓게 지칭한다. 그리고 보이콧은 사람의 이름이기도 한다.

아일랜드 주둔 영국군 대위로 전역한 찰스 커닝엄 보이콧은 1880년 9월 ‘타임스(The Times)’에 기고를 한다. 마을의 어느 상점도 그에게 생필품을 팔지 않고, 하인들은 일을 그만뒀다고 했다. 우편물을 가로채는 일이 잦았고, 식량도 소리 없이 사라지는 상황을 전달하며 도움을 청했다. 보이콧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 사정은 이랬다. 보이콧은 1879년 아일랜드 북서부의 한 지역에서 토지 지배인(소작농을 관리·감독하는 마름)으로 고용됐다. 당시 아일랜드에선 3차 대기근이 한창이었다. 흉작과 굶주림에 내몰린 소작농들은 영국인 지주와 보이콧에게 소작료 인하를 요청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보이콧은 공정한 소작료, 농지 임차권 보장 등을 요구하는 소작농 권리 운동에 참여한 이들을 쫓아내기도 했다. 급기야 소작농과 사회운동가들은 ‘랜드 리그(Land League)’라는 모임을 만들고 조직적 저항에 나섰다. 지역 주민 모두 보이콧에게서 등을 돌리는 식으로 압력을 가했다. 군대와 경찰이 동원돼 사태를 해결했지만, 보이콧은 해고됐다.

보이콧이 당했던 것처럼 보이콧은 폭력이나 물리적 충돌을 피하면서 상대를 혼쭐낼 수 있는 수단이다. 다만 좁디좁은 칼날 위를 달리는 일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극단적 신념이나 이념에 변질될 수 있다. 지난달 22일 미국 영국 등 30개국이 위구르족 인권 탄압을 이유로 중국 신장 면화를 제재하기로 하자 중국 여론은 험악해졌다. 신장 면화를 사용하지 않기로 선언한 의류업체를 표적으로 한 불매운동이 거세게 일고 있다. 충돌의 전선에서 한쪽은 인권을, 다른 쪽은 애국을 외치는데 이성이나 합리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노골적인 국제정치 셈법만 있다.

소비 권력, 그리고 그 힘이 표출되는 보이콧은 더 건강하고 우아해야 하지 않을까. 자본과 정치 권력이 쉽게 쓰고 버리는 인권, 노동, 공정, 환경, 정의를 품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살 만해질 테니.

김찬희 디지털뉴스센터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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