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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섬情談] 아무리 하찮은 삶일지라도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지난 주말에 꽃비 속에서 조해진 소설집 ‘환한 숨’을 읽었다. 제철보다 열흘이나 빨리 피어난 꽃은 피부에 소름을 만드는 차가운 비를 맞고 점점이 떨어져 내리고, 나는 지붕 아래 벤치에 앉아 지는 꽃들을 처연히 바라보면서 한 장씩 한 장씩 소설을 읽어 나갔다.

슬픔은 저 꽃이 생을 미처 충분히 누리기도 전에 어이없이 스러진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서 온다. 너무 이르게 와서 지나치게 빨리 지는 바람에 저 꽃은 어쩌면 누군가의 휴대전화 속 한 장 사진으로도 자기 존재의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지 모른다. 혹여 지나가는 벌과 나비조차 저 꽃을 찾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불안한 목소리들이 메아리치다 한곳으로 모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고, 무엇도 남기지 않는 삶도 가치가 있을까.

조해진 소설의 관심도 “이름 없는 죽음의 흔적”에 있다. “자신의 삶에는 타인의 호기심이나 애틋한 관심을 받을 만한 사연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 아무것도 아니고 무엇으로도 남지 못할 존재들에게 그녀는 눈길을 던지고, 가까이 다가가며, 기꺼이 입술을 넘긴다. 소설의 인물들은 비 온 후 땅으로 쏟아져 무참히 짓밟히는 무명의 꽃들처럼 비정한 사회와 무책임한 인간에 의해 모욕당하고 상처 입은 채 나타난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말기암 환자와 그를 돌보는 호스피스, 현장실습을 나갔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청소년 노동자와 일이 힘들다며 그만두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참으라는 말밖에 건넬 수 없었던 특성화고 기간제 교사, 누구도 위험을 말해 주지 않았기에 어른들만 믿고 일하다 수은중독에 걸려 죽은 미성년 노동자와 그 삶을 기록하려는 다큐 감독, 부당 해고를 당한 기자와 그 자리에 입사한 수습기자, 북한군 전쟁 포로 생존자와 그 생애를 받아 적은 구술 작가 등. 이들은 모두 지난 몇 년 우리 사회가 겪었던 사건과 겹쳐져 있다. 하지만 조해진이 관심을 두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서 고통받는 존재들이 간직한 작은 진실이다.

단편 ‘눈 속의 사람’에서 최길남은 포로가 된 후 미군 끄나풀 노릇을 하면서 북한군 패잔병에 대한 무차별 학살에 앞장선다. 공식 기록은 그를 제 한 목숨 살자고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겁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수치에 사로잡혀 사는 최길남에게도 인간적 순간이 있었다. “팔다리가 짧고 몸통이 가는 연약한 생명”을 구하려고 군견에 달려든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하찮은 인생일지라도 완전히 무시해도 좋은 인생은 없다. 역사의 무정함에 짓밟히고 생활의 잔혹함에 찢긴 무명의 존재들일지라도, 누구한테나 소중한 행복의 기억은 있다. 따라서 우리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인생 앞에서도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누구도 그 이상은 해낼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인생은 어둠에 붙잡혀 있을지라도, “결국엔 환해지는 이야기”이다.

타자의 인생을 우리가 절대적으로 존중해야 하는 것은 인간이 모두 약자의 공동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작품 ‘파종하는 밤’에서 다큐 감독인 나는 온도계 공장에서 맨손으로 수은을 다루다 영문도 모르고 죽어간 소년공 이야기를 듣는다. 공장에서 돌아온 날 밤, 나는 꿈에서 추위에 떠는 소년공 M을 만난다. 만난 적 없는 M에게 이토록 빨리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발달장애 아이를 기르고 있어서이고 같은 아파트에 발달장애를 앓는 ‘왼팔 남자’가 살아서이다. 우리는 모두 어느 한 부분에서는 약자이고, 둘러보면 주변은 온통 약자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누구나 언젠가는 병들어 죽어가는 약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두가 필연적으로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은 우리를 타자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억하는 윤리적 존재로 만든다. 열흘 붉은 꽃은 없으나, 모든 꽃은 적어도 열흘은 사랑받았다. 다행히, 이것이 삶인 듯하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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