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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의 문화스케치] 진짜 같은 믿음


“진짜 같다!” 길에서 한 아이가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 무엇을 본 것일까. 대체 어떤 것이 진짜 같은 것일까. 진짜 같은 것을 보고 아이는 기뻤을까? 그 놀라움은 진짜의 어떤 속성에서 비롯한 것일까? 진짜 같다는 것은 진짜는 아니라는 말이기도 한데, 아이에게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어느새 나는 진짜와 진짜 같음을 구분하는 것에 골몰하고 있었다. 나아가서는 ‘…같다’라는 표현이 가져다주는 언짢음과 부족함에 대해서도 헤아리기 시작했다. 봄날 같다는 것은 아직 완전한 봄날이 아니라는 것이다. 살 것 같다는 말은 온전한 삶에 미처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밖에서 맛있는 걸 사 먹을 때 흔히 “집밥 같다”고 말한다. 이때 집밥은 무언가 푸근하고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을 가리킨다. 집에서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정이나 손맛 같은 속성이 포함된 개념이기도 하다. 집에서 먹을 때는 가려 먹던 사람조차 집밥 같음에 취해 밖에서는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반면 집에서 한 음식이 맛있으면 “밖에서 사 먹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밖에서 사 먹을 때에는 집밥 같다고 하고 집에서 먹을 때에는 밖에서 먹는 것 같다고 하는 일, 일상에서 발견하는 매일의 아이러니다.

사진인 줄 알았는데 그림인 경우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걸 어떻게 그렸지?”라는 물음에는 사진의 정밀성에 대한 예찬이 담겨 있다. 사진으로 찍어도 될 것을 굳이 왜 그림으로 그렸을까 하는 의문까지 연결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보통은 “진짜 사진 같다”는 감탄에서 감상이 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으로 찍어도 될 것을 그림으로 그려낸 이유에 대해 떠올려본다면 진짜 같음에서 오는 ‘진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계를 현상 그대로 재현한 극사실주의 작품들, ‘찐’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어떤 진심에서도 진짜 같음에서 오는 진짜를 찾아낼 수 있다.

아이는 자라면서 진짜 같은 마음에 속기도 하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물건에 현혹되기도 할 것이다. 진짜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닌 걸 깨닫고 오랫동안 실망감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오늘의 나처럼 자문할지도 모른다. 진짜란 무엇일까? 진짜 같은 건 또 무엇일까? 그때 그의 가슴속에는 진짜를 발견하는 눈이 하나 생길 것이다. 이 눈은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눈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진짜를 찾아내는 눈일 것이다. 상대에 대한 애정 없이는 결코 본색을 드러내지 않는 진짜 말이다.

얼마 전 친한 사람의 생일이 있었다. 선물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혹시 필요한 게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카드만 한 장 써주라고, 얼굴을 보여주면 그것으로 족할 거라는 답변이 왔다. 진짜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케이크와 꽃다발을 사고 카드는 꽃다발 속에 꽂아 넣었다. 내 마음이 진짜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무엇을 더했을 때 상대의 기쁨이 극대화될 거라고 확신하던 마음은 진짜가 아니었다. 아무리 후하게 평가해도 진짜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카드와 케이크와 꽃다발을 받고 환히 웃던 그의 기쁨은 진짜였다. 진짜 같은 것으로 진짜를 만났다.

선물을 건네기 전 꾹꾹 눌러쓴 카드를 읽어보니 진짜, 정말, 너무 같은 부사들이 한가득 있었다. 진심을 알아 달라고, 축하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느껴 달라고 특정 단어에 기대고 만 것이다.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진짜 같은 가짜는 사람을 현혹시키지만 가짜 같은 진짜는 애초에 덧문을 걸어 잠그게 만든다.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은 진심이다. 진심은 진짜에서 비롯한다. 때때로 진짜 같음이 상대의 배려에 의해 진짜가 되기도 한다. 진짜 같은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비로소 진짜로 피어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발목이 묶인 시기가 1년을 넘어섰다. 시대라고 썼다가 도리질을 하고 시기라고 고쳐 쓴다. 시대라고 말하면 이 시간이 한없이 길어질 것만 같다. 연일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지만 백신 접종이 시작됐으니 올 연말에는 우리에게 안락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이 믿음은 진짜다. 드디어 왔다고 믿었는데 어느새 갈 채비를 하고 있는 봄날처럼, 만발했다고 말하는 순간 지기 시작하는 벚꽃처럼,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 뭉클해지는 순간처럼 진짜다. 진짜 같은 믿음이라도 붙잡고 싶은 나날, 봄날을 만끽하며 걷는 사람들을 보다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진짜다!”

오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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