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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하버드대 유감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지난주 페이스북에 오른 퇴역 군인의 영상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미국 오하이오주 웨스트 체스터의 선출직 공무원 리 웡(Lee Wong). 열여덟 살에 미국으로 건너온 웡은 50년 넘게 미국에서 살았는데 여전히 인종차별에 시달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에 오자마자 시카고에서 아시아계라는 이유로 구타당해 병원 신세를 졌던 그는 쫓기듯 미 육군에 입대했고 20년을 복무했다.

‘꿈의 나라’는 웡에게 증오와 혐오, 차별의 상처를 안겼다. 숱한 인종차별에 시달리고도 그는 차마 부끄럽고 두려워 입을 닫고 살았다. 그러나 침묵으로 상처가 치유되진 않았다. 고희를 앞둔 베테랑은 타운홀에서 인종차별에 대해 연설을 하다 반세기 넘게 쌓인 울분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내 애국심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드리죠”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단추를 하나씩 풀고는 셔츠를 위로 들어 올렸다. 가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흉터. 군 복무 중 전투훈련을 하다 입은 상처였다. 단지 미국 백인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식료품 가게에서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치는 꼬마에게, 그리고 그의 얼굴을 못 봐주겠다며 애국심을 문제 삼는 이들에게 “이게 바로 제 증거입니다”라며 격정을 토로한 것이다.

아시아계를 겨냥한 미국 내 증오범죄가 심상치 않다. 총과 흉기, 주먹에 맞아 숨지거나 다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달 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사망한 8명 중 4명은 한인 여성, 2명은 중국계 여성이었다. 지난 주말에는 캘리포니아에서 반려견과 산책하던 60대 아시아계 여성이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이 사건 직전에는 뉴욕 지하철에서 흑인이 아시아계 남성을 실신시킨 뒤 무차별 폭행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미국 내 인구 상위 16개 도시에서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가 50% 가까이 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또 인권단체 ‘Stop AAPI Hate’는 2020년 3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인종차별 사건이 3795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매일 10건 이상 아시아계를 향한 증오범죄가 벌어지는 셈이다.

이 와중에 미국 최고의 명문 하버드대학교가 아시아계에 대한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며 작성한 글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일었다. 하버드대 상담 및 정신건강 서비스 사이트는 “당신은 아시아인으로 태어나지 않기를 바랐겠지만, 당신의 조상들은 훨씬 더 나쁜 사건들을 겪어왔다는 걸 기억하라”고 충고했다. 하버드대는 위로하려다 생긴 실수라고 했지만 아시아인으로 태어난 것을 마치 천형(天刑)쯤으로 여기는 표현이어서 많은 이들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하버드대 인종차별 문제는 처음이 아니다. ‘공정한 입시를 위한 학생 연합’은 하버드대가 입시 과정에서 용기, 친절함 같은 주관적 인성 지표에서 아시아계 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매겼다며 2014년 소송을 제기했다. 실제로 2000년 이후 16만명의 지원자 데이터를 보니 최상위권 아시아계 학생이 입학할 확률은 13%였고, 같은 점수의 흑인과 백인 학생은 각각 60%와 18%였다. 미국 2심 법원은 지난해 캠퍼스의 다양성 증진을 위해 인종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는 판례를 인용하며 하버드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아직 연방대법원 판결이 남아 있다.

조금 더뎌도 인종차별을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교육이다.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달라도 우리 모두는 같은 인류이며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는 사회적 감수성을 끊임없이 가르쳐야 한다. 차별을 정치적 무기로 휘둘렀던 도널드 트럼프 시대가 가고 조 바이든 시대가 왔다. ‘침묵하면 공범이다. 우린 공범이 될 수 없다’며 인종차별 종식을 주창한 바이든 정부가 과연 어떤 해결책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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