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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고위공직자 부패와 유리바닥 깨기

신봉기(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선거를 앞두고 경쟁 정당의 유력 후보 뒷조사를 시킨 것이 발각돼 주지사직을 사퇴하고 카나리아 제도로 여행을 떠났던 그는 여러 통의 전화를 받고 스위스 제네바로 향했고 이튿날 그곳의 한 호텔 욕조에서 옷을 입은 채로 자살했다. 1987년 10월 11일 스위스 검찰은 사인을 약물 과용으로 인한 자해로 발표했지만, 그의 사망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스라엘 모사드에 의한 타살설이 제기되고 있다. 자살이든 타살이든 그가 궁지에 몰려 주지사직을 버리고 떠난 이유는 뒷조사 스캔들과 이를 수습하기 위해 건넨 5만 마르크 문제였다. 바로 독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지사 우베 바르셀의 마지막 며칠간 얘기다.

바르셀은 연방 총리인 헬무트 콜이 발탁한 38세의 최연소 주지사로서 독일의 케네디로까지 불렸다. 그런 그가 가벼운 동기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것에 독일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지만, 부패 문제로 직을 던진 양심은 높이 인정됐다. 당시 한반도에는 무기 도입이나 도시 개발 등의 대가로 수백억원대의 리베이트가 논란이 되면서도 정작 당사자들은 떳떳이 얼굴을 내밀고 다니던 때였기에 이 정도 문제로 자살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1993년 8월 12일 모든 금융기관이 셔터를 내린 퇴근 시간에 금융실명제 도입을 위한 긴급재정경제명령이 전격 발동됐다. 이튿날부터 금융거래는 신분증 없이는 허용되지 않았다. 여야 불문하고 평가는 긍정적이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대학생 인기투표 1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여권 실세들까지 금융실명제의 족쇄에 걸려 법정에 서기도 했지만, 지하경제를 양성화하고 정경유착 등 각종 부정부패 차단에 크게 기여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대통령 아들들이 정치자금 수수로 줄줄이 영어의 몸이 된 것도 예견된 일이었다.

새삼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9억원 정치자금 수수 사건으로 대법관 전원일치 확정판결에 실형까지 살고 나온 사건임에도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정치적 의도로 검찰을 몰아세우며 한 전 총리 명예 회복 프로젝트를 강행했다. 옵티머스·라임·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 현 정부 들어와 벌어진 각종 부패 사건들은 아직도 제대로 법의 심판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각종 기획 사건들의 주범으로 의심받는 자들은 버젓이 광역시장·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권력을 누리고 있다.

유리바닥은 깨어져야 한다. 국민은 뻔뻔한 권력자들의 추락의 한계, 그 유리바닥이 깨어지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개발 정보를 미리 빼내어 부동산을 긁어모았던 자,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돈벌이하고 권력자 반열에 진입한 자 등 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부패 확증범들의 유리바닥은 너무나 두껍다. 쉽게 나열할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권력 범죄 사건들이 쌓여있음에도 여전히 그들이 매스컴에 등장하는 것을 보는 국민의 고통은 말이 아니다.

고졸 대기업 임원이나 전문대 출신 이장이 장관·도지사가 된 이력의 유리천장 깨기 케이스에 환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유리천장 깨기를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덜 배우고 가지지 못한 자들의 하층계급화를 정당화한다. 지금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유리바닥 깨기다. 유리바닥 깨기는 특권 계급을 없애는 것이다. 최고의 대학 출신이, 최고의 권력자가, 법관 등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커리어를 가진 자들이 부패한 경우에 그들도 제대로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정상적인 민주사회다. 우리 국민은 같은 수준의 범법 행위라면 범부와 특권층의 구분 없이 같은 수준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미확인 부패 혐의로 혐오감을 유발시켜 지지자 결집과 반대자 기권이 이어진 이번 보궐선거는 역대로 보기 어려운 막장이었다.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으로 부산 수호 작전에 들어갔지만 성추행으로 물러난 오거돈 일가가 가덕도 인근 곳곳에 가진 광대한 토지 목록으로 인해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특권 계층에서 주로 일어나는 각종 부패 스캔들의 주인공들이 정권과 검찰·경찰, 법원과 언론에 의해 추락의 한계를 부여받는다면 그것은 민주사회가 될 수 없다. 이런 사회에서 국민은 오로지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 지위에 있을 뿐 유리바닥은 절대 깨어지지 않는다. 약자에겐 유리천장을, 강자에겐 유리바닥을 과감히 치워버려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국가다.

신봉기(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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