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뉴스룸에서

[뉴스룸에서] 이상한 반성

전웅빈 국제부 차장


“더 꾸짖어 달라. 마음 풀릴 때까지 반성하겠다.”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일성은 변명 없는 낮은 자세다. 선거 직전까지 ‘생태탕’과 ‘페라가모’ 깃발을 들고 “진심이 거짓을 이긴다”며 자신하다 하루 만에 180도 뒤바뀐 여당의 모습, 관전자는 ‘인지부조화’를 느낄 만하다.

아마도 분노의 깊이가 크다고 느꼈기 때문이리라. 분노는 ‘원통하다’ ‘분하다’는 뜻의 ‘분’(憤), ‘성내다’ ‘나무라다’는 뜻의 ‘노’(怒)의 결합이다. 憤에는 마음에 뭉쳐있는 것이 일시에 솟아오른다는 의미, 怒에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마음이라는 의미가 담겼다. 결국 원통해서 성내거나 꾸짖는다는 것인데, 표심에 이런 감정이 담겼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도 위원장 일성은 유권자들의 억한 심정을 이해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겠다.

헷갈리는 건 이후 행보에 나타난 몇 가지 모호함 때문이다. 선거 참패 이후 일고 있는 여권 내홍을 보면 누구 마음을 풀어주겠다는 것인지 대상과 연유가 불분명해 보인다. 그 모호함은 “덜 개혁적이어서 불만이라는 지지층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 밀어붙인다는 관점에서 불만이 있다”고 한 최인호 수석대변인 발언에 잘 드러나 있다. 잘못을 빌거나 마음을 풀어줘야 할 상대를 아직 정하지 못한 모양이다.

전자는 문재인 대통령 극렬 지지층이 자주 이용한다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상세히 표현돼 있다. 그곳에는 선거 직후 대체로 “180석 몰아줬는데 뭘 했느냐”는 답답함을 토로하는 글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민주당을 지지했다 돌아선 유권자들은 입법 독주를 더 잘하지 못해 화가 났다는 논리가 만들어진다. 임대차 3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등 주요 입법 단독 처리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말이다. 검찰 개혁을 하겠다며 수장을 괴롭혔던 행태는 표창할 일이었다는 말로 치환된다. 이들은 지금이라도 180석의 힘을 제대로 보여줘 ‘검수완박’을 조기 완성하라고 채근한다.

당내 동조 세력들도 많은 듯하다. 동조자들은 “모든 비판을 차단하고 나만 정의라 고집하는 오만함”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정책 우선순위를 정했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내놓은 동료 의원 반성문을 내부 총질이라 여긴다. ‘초선5적’ ‘초선족의 난’이라는 조롱까지 달렸다. 김해영 전 민주당 의원이 “조국 전 장관을 왜 그렇게 지키려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고 하자, 방송인 김어준씨가 “지는 쪽에서는 대체로 선거에 가장 도움이 안 됐던 분들이 도움 안 될 말을 먼저 나서서 한다. 이분들 말대로 하면 망한다”고 저격했다. 이쯤 되면 꾸짖는 사람이 누구인지 헷갈릴만하다. 그래서 다음 행보를 지켜봐야만 민주당이 누구에게 사과하는지 알 수 있을 듯싶다.

대놓고 지지하지 못하는 ‘샤이’ 표심이 있다고 민주당은 단언했었다. 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연유가 부끄럽다는 지지층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표현으로 보인다. 이들 샤이 세력은 선거 결과가 거꾸로 됐을 때 피해자에게 해줄 말이 없다는 사실도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성은 “이번 선거에서 후보 공천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초선의원들의 고백에 우선 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20대와 40대’ ‘이대남(20대 남성)과 이대녀(20대 여성)’ 같은 구분을 만들어 오답 노트를 써가는 모습은 그래서 왠지 익숙하고 불편하다. 편을 갈라 저울에 올려두고 더 득이 되는 쪽의 마음을 구하는 방식은 다른 쪽을 적으로 만들어 분노의 힘을 키우는 전략에 불과하다. 전략에 대한 오답 노트는 반성이 아니다.

전웅빈 국제부 차장 imung@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