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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남자들에게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등단하고 1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들이 지난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 가운데 일곱 편을 선정하는 ‘젊은작가상’은 매년 이런저런 이유로 화제가 됐다. 얼마 전 출간된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눈길을 끌었던 건 책 자체가 아니라 인터넷서점에 달린 독자 리뷰였다. 세 군데 인터넷서점을 살펴보니 양상은 비슷했다. 별 다섯 개(최고)거나 별 한 개(최저). 그중 최저점을 준 독자의 리뷰는, 수상자가 전원 여성이라는 점과 작품들이 한결같이 사회적 약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내용이 많았다.

여성 작가의 자서전이나 인터뷰를 읽다 보면 남성 중심의 문학계로 인해 겪은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오랫동안 여성 작가들은 스스로 작가라 칭하기를 주저하거나 작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남성 작가들이 작가로서의 자격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글쓰기가 운명임을 깨달았다고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것과 달랐다. 왜 일까. 판타지와 과학소설을 썼던 어슐러 르 귄의 초기 작품들이 모두 남자의 세계가 배경인 이유는, 남자처럼 글을 쓰며 남성의 관점으로 사물을 표현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주위의 여성 작가들이 남자인 척하거나 이름의 머리글자만 써야 했던 분위기에서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사회파 미스터리 장르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쳐온 미야베 미유키는 데뷔하고 28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런 소재의 글을 쓰는 건 여성 작가가 잘하지”라거나 “여성 작가치고는 선이 굵직한 작풍이다” “여성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쓰다니 별난 일이네요”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 출간된 작품만 보고 판단하면 좋겠는데 출판계에서 일하는 사람들마저도 이런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걸 보며 기가 막혔다는 얘기를 나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흑인의 정체성 문제에 천착했던 토니 모리슨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후에도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받았다. 언제까지 주변부의 이야기만 쓸 거냐고.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를 엮은 책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모리슨은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묻고 싶은 것은 ‘백인에 대한 책은 언제 쓰실 건가요’일 겁니다. 그들은 다른 작가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물어보지 않아요. 제가 앙드레 지드에게 ‘언제쯤 진지해져서 흑인에 대해서 글을 쓰기 시작할 건가요?’라고 묻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람들의 질문 뒤에는 ‘중심이 존재하는데 그건 백인이다. 그리고 흑인이나 아시아인 등 온갖 종류의 주변적 사람이 있다’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런 사례 외에도 여성 작가들의 글쓰기에 가해진 억압과 좌절시키기의 역사에 대해서라면 ‘여자들이 글 못 쓰게 만드는 방법’에 얼마든지 나와 있다. 그동안 남성 작가들은 문단을 만들고 규칙을 만들고 문학상을 만들었다. 지금껏 출간된 수많은 문학상 수상작품집 중 남성 작가의 작품만으로 이뤄진, 혹은 남성 작가의 작품이 대다수인 경우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성 작가들의 작품만으로 선정된 건 젊은작가상이 최초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이건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닌가. 상전벽해라고까지 표현하진 않겠지만 놀랄 만한 변화인 건 분명하니까.

게다가 언론 보도를 보니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구매자들의 성비는 여성(73%)이 남성(27%)보다 높다. 선거로 치면 압승이다. 거의 모든 서점의 차트를 석권했을 만큼 판매도 월등하다. 어슐러 르 귄의 표현을 빌리면, 여성 작가들이 남자들이 읽고 싶어 하는 내용을 쓸 필요가 없고 남성 작가와는 다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가 부당하다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구미에 맞지 않은 내용의 글을 쓰는 여성 작가들을 비난하고 그들의 작품을 선정한 출판사를 질타해 물길을 바꾸고 싶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여성 작가나 출판사가 눈치를 봐야 할 정도의 영향력을 키우는 수밖에. 방법은 하나뿐이다. 남자들아, 책 좀 사라.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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