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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시케이션 계획 중인 미국인 집단면역 초입 들어선 영국인
관광재개 서두르는 유럽인 외국인 관광 허용한 이스라엘
백신이 만드는 일상회복 풍경 경제수치로 속속 반영되는데
세계 10위 경제라는 한국은 백신 격차의 밑바닥에 놓였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됐는지 이 정부에 끝까지 물어야

‘백시케이션(vaccication)’이라는 조어가 미국 언론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vaccine과 vacation을 합성한 이 말은 두 가지 용례를 가졌다. ①백신을 맞으러 떠나는 여행 ②백신을 맞은 뒤 떠나는 휴가. 처음엔 ①의 의미로 생겨난 듯하다. 주(州)마다 우선순위가 달라서 코로나19 백신을 빨리 맞을 수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여행을 뜻했다. 모든 주가 모든 성인에게 맞힐 백신을 확보한 요즘은 대부분 ②로 쓰인다.

백시케이션을 다룬 글에는 PTO(유급휴가)란 약어가 연관 어휘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5월 말까지 접종을 마치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일상 회복을 약속한 독립기념일(7월 4일)에 집단면역을 자축한 뒤, 코로나 탓에 쓰지 못했던 PTO를 이용해 긴 여행을 떠나는 한여름의 백시케이션. 그렇다. 미국인은 요즘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여행이 제한되지 않은 멕시코 휴양지 예약률은 2019년보다 230%나 폭증했다. 프랑스의 바캉스 문화를 부러워하던 이들이 올해만큼은 프랑스인처럼 즐기려 벼르는 풍경은 넉넉한 백신이 만들어냈다.

영국·브라질·남아공 변이 바이러스가 다 들어간 미국에선 뉴욕 변이도 생겼다. 뉴욕의 신규 확진자 70%는 이 변이에 감염된다. 그런 뉴욕주가 해외에서 오는 여행자의 격리 의무를 며칠 전 해제했다. 백신을 맞지 않은 여행자도 격리와 검사를 권고할 뿐 강제하지 않는다. 이미 40%에 도달한 백신 접종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어 변이의 전파 속도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코로나 최대 피해국 중 하나인 영국은 그제 파티를 벌였다. 석 달가량 이어진 봉쇄가 풀려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야외 테이블마다 빼곡히 앉아 활짝 웃으며 맥주를 마시는 사진은 4차 유행 공포에 썰렁해진 같은 날 서울 이태원 풍경과 대조적이었다. 영국은 성인의 60%가 백신을 맞았다. 감염됐던 이들을 포함해 국민 73%가 항체를 가졌다고 한다. 집단면역 범주에 들어선 것이다. 7월까지 모든 성인이 접종하면 영국인도 백시케이션을 떠날 텐데, 바다 건너 유럽으로 가는 이들이 많지 싶다.

유럽연합(EU)의 백신 보급이 미·영보다 뒤졌던 건 EU 차원의 공동구매·공평분배를 택해서였다. 모두가 안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는 백신 보급 원칙을 유럽 안에서라도 지키려 한다. 한 발 뒤진 물량은 생산량 증대로 만회하고 있다. 유럽에만 생산시설이 53곳 있고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지난주에도 독일 마르부르크에 화이자 공장이 새로 들어섰다. EU는 7월 중순까지 모든 회원국에 성인 70%가 접종할 백신을 공급하게 된다. 관광산업 비중이 커서 백신여권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6월 중순 상용화 계획을 세웠다. 백신여권을 이용한 관광의 안전성은 이스라엘이 대신 실험해준다. 국민 과반이 2차 접종까지 마친 그 나라는 5월 23일부터 외국인 관광객 입국을 허용키로 했다.

이렇게 일상 회복에 다가선 모습은 경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강력한 경제 성장과 급속한 일자리 증가”에 올해 미국 성장률이 6~7%를 웃돌 거라고 전망했다. 백신을 가진 나라와 그러지 못한 나라. 그 격차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일상에서, 이동 범위에서, 경제 활동과 경제 수치에서 이미 벌어지기 시작했고 계속 커질 것이다. 몇 달 전 이 코너에 ‘백신이 만들어지면’이란 글을 썼다. 공평한 백신 분배가 바이러스 퇴치에 효율적이란 내용을 담았다. 불가피하게 격차가 발생한다면 백신 구매 대열의 앞쪽에 설 한국은 접종 노하우를 저개발국과 충분히 공유하면 좋겠다고도 적었다. 이 문장이 이렇게 민망해질 줄은 미처 몰랐다. 세계 10위 경제력을 가졌다는 나라가 백신 사다리의 밑바닥에서 격차를 온몸으로 체감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몇 달간 노하우를 쌓은 화이자와 모더나는 올해 생산량을 계획보다 크게 늘렸다(각각 20억→25억, 6억→10억 도스). 무슨 계약을 어떻게 했는지, 한국 물량은 늘어나지도 앞당겨지지도 일정이 확정되지도 않았다. 미국이 “필요 없다”던 아스트라제네카, EU가 내년 구매 목록에서 뺀 얀센 백신을 붙들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11월 집단면역이 생겨도 앞선 나라와 반년 가까이 격차가 벌어지는데 그마저 불확실해졌다. 부동산에 “자신 있다”던 대통령은 백신도 “자신 있다”며 설명 대신 자신감만 드러내고 있다. 도대체 그간의 백신 의사 결정 과정이 어땠는지, 이 정부에 끝까지 물어야 한다.

태원준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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