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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목숨을 살린 한마디 조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버스에서 내리다가 보도블록에 발을 딛지 못하고 경계석에 걸려 눈을 다쳤다. 병원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여러 검사를 했다. 이마 위가 찢어진 것은 꿰매면 그만이었지만 안와골절로 수술까지 해야 했다. 그냥 돌부리에 살짝 걸려 넘어진 것에 불과했는데도 목숨을 잃을 뻔한 것을 피했으니 천우신조라고 여러 사람이 말했다.

이 일을 겪으며 문득 11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 전남 영광에 살고 있던 역사학자인 친구는 새 잡지 창간과 어머님 모시는 일로 힘겨워하던 내가 안타까웠는지 나보고 무조건 내려오라고 했다. 친구는 사방이 산에 갇힌 들판으로 나를 데려갔다.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 대종사가 신도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조성한 곳이었다. 좋았다. 이런 곳에서 농사나 지으며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함께 들판을 거닐던 친구는 갈대숲에 이르러서 “사람이 높은 산에 걸려 넘어지는 법은 없다. 의총(蟻塚·개미 무덤)에는 걸려 넘어진다”는 말을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제왕학이라는 학문을 탄생시킨 전국시대의 사상가인 한비자가 한 말이었다. 사람이 삶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원대한 꿈이나 이상이 잘못돼서가 아니라 사소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정말 운이 나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했다. 정말 좋은 충고였다. 그때부터 나는 사람들에게 모든 일을 내 생각으로 설득하기보다 상대의 입장에서 헤아리기 시작했다. 작고 사소한 일이라고 해서 무시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모든 문제가 저절로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친구의 조언이 내 목숨을 살린 셈이었다.

수술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돌부리는 단순한 돌부리가 아니었다. 내게 어떤 깨달음을 주기 위해 누가 일부러 심어 놓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돌부리는 내게 새로운 인생을 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러니 앞으로의 인생을 정말 제대로 살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다. 의사가 대체로 건강한 몸이라고 말해주니 친구의 말이 다시금 생각났다.

다시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장 중시해야 할까. 나는 최근에 출판 창업자에게 필요한 근본적 미덕 세 가지가 지구력, 연결 능력, 이타성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구력은 달리 말하면 미래에 대한 확신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다.

누구나 무엇이나 지속적으로 연결된 초연결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금융망, DNA 데이터베이스, 인공지능망, 테러나 마약 네트워크, 통화 플랫폼 등 모든 네트워크에서 서로 연결돼 있다. 빅데이터, 공유경제, 가상·증강현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메이커운동 등 첨단의 어벤저스급 기술들은 우리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이런 현실에서 인간은 텍스트로 서로 연결돼 있다. 글로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내는 사람들은 인플루언서가 돼 자신의 꿈을 펼치며 행복을 구가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타성이다. 프란스 드 발은 ‘공감의 시대’(김영사)에서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존재가 아니라 이타성과 공정성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라고 했다. 팬데믹 시대에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이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게 공정성이라는 것은 지난 7일 재보궐선거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모든 것을 공유하겠다는 자세를 가진 사업가들이 성공하는 ‘공유경제’의 시대이기도 하다. 타인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는 자,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나부터가 그런 미덕들을 배워야 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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