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한마당] 에일리언

천지우 논설위원


에일리언(alien)이라고 하면 동명의 SF영화 시리즈를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여성 주인공이 우주에서 만난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는 내용인데, 외계 생명체가 곧 제목의 에일리언이다. 흉측하고 기괴하게 생긴 이 생명체는 인간을 공격해 양분을 빨아먹는다. 즉 착하고 무해한 외계인이 아니라 반드시 물리쳐야 할 괴물이다.

에일리언에는 외계인뿐 아니라 외국인, 이방인이란 뜻도 있다. 영국 가수 스팅의 노래 ‘잉글리시맨 인 뉴욕’의 후렴 가사가 딱 맞는 예다.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난 이방인, 적법하게 온 이방인, 뉴욕에 사는 영국인이에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시절 강도 높은 반(反)이민 정책을 쏟아내면서 에일리언이란 단어를 즐겨 썼다. 그것도 ‘illegal(불법)’ ‘criminal(범죄자)’ 등의 수식어를 붙여서 부정적인 의미를 키웠다. 저임 일자리를 불법체류자에게 빼앗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백인 블루칼라의 마음을 사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트럼프가 집권 초에 이민범죄 피해자 사무소를 신설하자 신고센터에 “외계인을 만났다, 생포했다”는 장난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불법이민자의 범죄를 부각시키려는 정권의 의도에 대한 반감 표시였을 것이다.

트럼프가 사용했던 의도에서 알 수 있듯이 에일리언은 외국인 체류자를 가리킬 경우에도 외계인을 대할 때와 같은 거리감과 배척하는 감정이 담겨 있다. 이민 업무를 담당하는 미 정부 기관들은 조 바이든 행정부의 지침에 따라 에일리언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19일 AP통신이 전했다. 에일리언은 ‘non-citizen(비미국시민)’ ‘migrant(이주자)’라는 표현으로, ‘illegal alien(불법체류자)’은 ‘undocumented individual(미등록자)’ 등으로 대체된다.

한국도 올해 외국인등록증의 영문 표기를 ‘Alien Registration Card’에서 ‘Residence Card’로 바꿨다. 배타적인 어감이 강한 에일리언을 뺀 것이다.

천지우 논설위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