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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밥상+머리] 단짠단짠 시대의 쌉싸름담백


봄을 느낀 첫 주에는 곰취를 샀다. 둘째 주에는 냉이와 달래를 샀다. 셋째 주에는 땅두릅을 샀다. 곧이어 참두릅을 사고, 눈개승마를 샀다. 이번 주에는 엄나무순과 오가피순을 샀다. 요즘 내가 자주 장을 보러 가는 이유다. 봄은 단맛이 아니라 쌉싸름한 맛으로 온다.

곰취는 데쳐서 밥을 동글하게 뭉쳐 넣고 쌈장을 올려 먹는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요리는 신선한 재료를 써서, 가능한 한 쉽고 단순한 노동으로 하되, 멋스러운 플레이팅을 더해야 제맛이다. 곰취쌈밥 정도면 이 세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모범 메뉴이다. 냉이는 손질하기가 좀 번거롭다. 일일이 씻고 다듬어야 한다. 그런 수고만 아니라면 다섯 번은 살 것을 한두 번으로 그치게 된다. 나무에서 나는 참두릅, 땅에서 나는 여러해살이풀 땅두릅 그리고 개두릅이라고도 부르는 두릅나무과의 엄나무 어린순과 역시 두릅나무과의 오가피순. 이들은 엇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하나 분별할 수 있을 만큼은 다르게 생겼다. 장미과인데 어째서인지 두릅 사촌쯤으로 보이는 눈개승마까지 총집합해놓고 나면, 봄날이 아주 화창하다.

두릅류는 데쳐서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간단하다. 숙회로 먹고 남은 건 나물 반찬으로 무친다. 나는 마늘이나 파를 생략하고 들기름과 간장 정도만 넣고 본연의 맛을 즐기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건 고추장을, 어떤 건 된장을 주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쳐서 하나씩 맛보는 재미는 육류파가 소고기,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한 상 차려 놓고 한 점씩 맛보는 재미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참두릅은 향과 맛이 참하다. 땅두릅은 참두릅보다는 조금 더 쌉쌀하지만, ‘독활(獨活)’이라는 외롭고도 의젓한 닉네임에 비해선 그리 독하지 않다. 개두릅은 ‘개’자가 붙어서인지 앞의 둘보다 마음껏 제 향과 맛을 발산한다. 그런데 그냥 단조롭게 쓴 것이 아니라 씹을수록 달큼한 쓴맛이다. 향수로 치면 탑노트, 미들노트 뒤에 남는 베이스노트가 달큼하고 쌉싸름한 것과 같다. 경쾌한 쓴맛이고, 매력적인 맛이다. 오가피순이 입에 넣는 순간부터 목구멍에 넘기는 순간까지 입안 전체에 고지식하고 묵직하게 고른 쓴맛을 전달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다고 오가피순이 쓰디쓰기만 할 뿐 맛없다고 말하기에는 나는 이 봄날의 쓴맛들을 사랑한다.

‘단짠단짠’이거나 화끈하게 매운맛이 유행하는 시대에 쌉싸름하거나 담백한 우리 봄나물의 맛은 왠지 억울한 맛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영어의 ‘비터(bitter)’에 격렬하고 억울하다는 뜻이 있는 것처럼. 쓴맛을 싫어하는 것이 인간 본능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쌉싸름담백한 이 맛을 좋아한다고 해서 어른이 된 것도 아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 선생님은 학교 정문 옆에 ‘쓴맛이 사는 맛’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으셨다고 한다. 인생이 쓸 때 삶은 깊어진다고. 그래도 선생님 말씀처럼 단맛이 달긴 달더라. 인생이 아무리 써도 진짜 어른은 드문 시대, 쓴 봄나물이 더 억세어지기 전에 오늘 저녁엔 두릅튀김을 해놓고 쓴 술 한잔해야겠다.

최현주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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