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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과거에 갇혀 사는 정권

천지우 논설위원


“애국이니 구국이니 하며 왜적과는 타협하지 않고 왜놈잡이 하겠다고 천방지축 돌아다니던 사람들, 그러니까 나부터도 행정에 대한 능력과 수완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비록 여러분은 일제의 폭정 아래서 자신의 명맥과 가족의 안위를 위하여 조금 친절을 왜인에게 표시했다 하더라도 해방된 조국에 헌신 노력하여 건국의 기초와 공로를 세움으로써 지난날의 약간의 과오는 속죄되는 것이니, 여러분은 각 분야에서 응수 노력하길 부탁드립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1894~1956)가 행정연구위원회에 모인 조선총독부 고등문관들에게 한 말이다. 행정연구위는 임시정부가 광복 직후 약 70명의 총독부 고등문관 출신들로 꾸린 건국준비위 성격의 단체였다. 항일투쟁을 해온 임시정부가 일제 부역 관료들을 조력자로 포용한 것이다. 정종현 인하대 교수가 쓴 책 ‘제국대학의 조센징’에 따르면 행정연구위와 유진오가 함께 마련한 헌법 초안이 대한민국 헌법의 원안이 됐다. 도쿄제국대학 법학부 출신으로 총독부 농상과장을 지낸 최하영은 “왜정 때 관리를 했다는 과오에 대한 속죄의 하나로 헌법 초안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제국대학의 조센징’은 일제의 엘리트 양성소였던 일본 본토 7개 제국대학에 유학한 조선인 1000여명에 관한 기록이다. 일제에 저항한 이들도 있었지만 유학생 대부분은 식민지 엘리트로서 식민통치의 부품 역할을 했고, 해방 이후에는 남북한 국가 건설의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됐다. 책의 저자는 “부정적 요소 때문에 제국대학과 관련된 한국의 경험을 도덕적 이분법으로 모두 ‘악’이라 규정하고 그것을 적출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생각하는 건 환상”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한국은 좋고 나쁜 여러 요소들이 뒤섞여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부정적 성분,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모두 말끔히 도려내고 순결하게 민족적인 것만 남길 수는 없다. 그건 환상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경선에 출마한 우원식 의원은 지난 18일 페이스북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마저 옹호하는 토착왜구에 분노를 느낀다”는 글을 올렸다. 일본 정부의 일방적인 원전 오염수 방류 결정은 이웃나라 입장에서 당연히 화가 나고 걱정되는 일이다. 다만 일본의 주장대로 오염수가 방류된 뒤 바다에서 희석돼 심각한 문제가 안 될 수도 있고, 이런 얘기를 하는 전문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순간 토착왜구가 돼 버린다니, 참 지독한 이분법이다.

우 의원의 글에는 현 정권의 지배적 인식이 담겨 있다. 우 의원은 “친일 잔재 청산은 과거가 아닌 대한민국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며 완전한 청산을 다짐했다. 그는 또 “(친일 세력이) 군부독재 기득권의 주축이 돼 대한민국 정치·경제·학문의 꼭대기에 섰다”며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우리 현대사는 이런 친일 기득권과의 계속된 싸움이었다”고 했다. 친일에 뿌리를 둔 기득권과 싸워 민주화를 이루고 권력도 쥐었지만, 적(敵) 혹은 적폐 세력은 여전히 강고하며 친일 잔재는 충분히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관념은 자주 드러난다. 지난해 윤미향 의원과 정의기억연대 관련 의혹이 쏟아졌을 때도 민주당 의원들은 “친일 세력의 부당한 공세”라고 반박했다. 여권에게 친일은 만악(萬惡)의 근원으로 보수정당, 검찰, 사법부, 언론 등 모든 기득권 적폐를 아우른다. 이런 인식은 ‘우리는 늘 핍박받는 피해자’라는 의식으로 연결되고, 이것은 또 일이 잘못될 경우 남 탓만 하는 습관을 강화한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20일 민주당 초선 의원 대상 강연에서 “당대표에 출마한 의원의 출사표가 친일 잔재 청산이라는 것을 보고 이분들이 서울·부산시장 선거를 패배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과거에 갇힌 것’이라고 했다. 과거에 갇혀 생각이 끊기면 역사 속에서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는 착각, 즉 정신 승리를 하게 된다. 최 교수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친일 잔재 청산이 아니라 반도체”라고 지적했다. 과거에 빠져 있지 말고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에 집중하라는 얘기다. 신익희 등 임시정부 인사들이 귀국하자마자 친일 관료들에게 도움을 구한 것도 당시 가장 중요했던 나라 세우기 과업을 위해서였다.

천지우 논설위원 mog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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