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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미술 작품을 즐기는 방법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나의 위시리스트에는 항상 그림이 포함돼 있다. 미술 관련 일을 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관심 있는 작가들의 신작을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일이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전시를 여는 사람의 마음에 팔리지 않았으면 하는 미묘한 심리가 겹친다. 내가 사고 싶다는 마음을 누르면서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고객에게 팔게 되면 기쁨과 아쉬움이 함께 찾아온다. 그래도 다양한 구매자의 반응과 취향을 알게 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나의 최연소 고객은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부모님을 따라 전시장에 온 어린이는 지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부모님의 예상과 달리 수백 점의 작품을 열심히 둘러보더니 “엄마 나 사고 싶은 그림이 있는데 내가 맡긴 세뱃돈, 얼마지?”라고 물었다. 엄마는 놀라서 “네가 작품을 사겠다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그동안 모은 거 다 써도 후회 없겠어?”라며 몇 차례 확인을 했다. 취향이 확실하고 영리한 어린이는 단호하게 전 재산 25만원과 작품을 맞바꿨다. 현장에 있던 작가와 대화도 나누고 사진도 찍으며 작품 구입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 초등학생은 이후 미술 작품을 보는 태도가 달라졌고, 다음 해에도 용돈을 모아 전시장을 방문했다.

미술 시장은 매우 작고 작품을 사는 사람들도 많지 않지만, 어쨌든 미술 작품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모든 작품은 특별하다. 개인의 경험과 취향과 안목에 따라 다른 선택이 있을 뿐 정답은 없다. 위에 소개한 어린이처럼 내가 좋은 것을 택하면 된다. 하지만 암기식 교육과 익명성에 길들여진 어른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확신하거나 드러내지 못하고 선택을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그림에 심오한 뜻이 없다고, 그저 관람객이 느끼는 대로 바라보고 작은 위로가 되면 더없이 좋겠다는 말을 종종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품에서 답을 찾으려 하고, 작품은 투자 목적으로 사는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한 남자분은 심각한 얼굴로 고백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림 보고 감동받아 우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거 진짜예요? 사두면 오른다기에 몇 점 사보기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는데 나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모나리자나 고흐의 진품을 봐도 아무것도 안 느껴지던데요.” 그분만이 아니다. “인상파 작품까지는 알겠는데 현대미술은 도대체 모르겠어요”라거나 이제 막 작업을 시작한 신진 작가의 작품을 앞에 두고 “이 작품 몇 년 지나면 얼마 정도 오를까요?”라고 묻기도 한다.

예술 작품을 즐기는 법을 묻는다면, 영화나 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2시간짜리 영화를 1분만 보고, 두꺼운 책의 한 페이지만 읽고, 스토리를 파악하거나 감동을 하기는 어렵다. 미술도 한 작품만으로 느끼고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한 작품으로도 시각적 아름다움이나 메시지가 읽히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해당 작가의 여러 작품이나 전시 전체를 훑어보길 권한다. 작가의 여러 작품에 일관성 있게 깃든 감정이나 메시지가 조금 더 쉽게 읽힐 것이다. 궁금하면 더 찾아봐도 좋지만 지식이나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전시가 황당하거나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도 괜찮다. 재미없는 영화나 책을 봤을 때처럼 “어우, 난 별로더라”라고 말하고, 다른 전시를 보면 된다.

또 다른 방법은 작품을 구입하는 것이다. 초보자가 취미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장비를 갖추는 과정에서도 이것저것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나와 내 공간에 어울릴 작품을 찾아다니며 고심하는 과정 자체가 취향을 확인하고 미술과 가까워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다. 전시장에 있던 작품이 내 공간으로 들어와 나와 함께 있으면 반려식물 못지않은 든든한 룸메이트가 된다는 사실은 구매자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처음부터 비싼 작품을 살 필요는 없다. 위시리스트에 작품을 넣어두는 것이 시작이다. 예술은 생각보다 쉽고, 근사하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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