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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이젠 재정의 지출구조를 논의할 때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세계 경제가 코로나19 위기로부터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회복세가 완연하고 유럽도 나름대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2차 유행 때부터 봉쇄 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백신 도입으로 생활의 정상화가 앞당겨진 것이 첫째 원인이다. 그러나 더 큰 요인은 주요 선진국들이 재정을 동원해서 강력한 경기부양 정책을 편 것이다. 이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2008년 금융 위기 때는 재정을 소극적으로 운영해 대침체가 이어졌지만, 이번에는 재정을 본격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을 넘어 대침체로부터 빠져나올 가능성도 나타나고 있다.

재정을 동원한 것은 다른 이익도 가져왔다. 2008년 위기 때는 직격탄을 맞은 취약계층을 별로 배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침체로 재정적자가 나자 오히려 취약계층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도 위기의 충격은 영락없이 취약계층에 집중됐지만 재정이 그것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다. 나아가서 최근 미국의 조 바이든 정부가 교육 및 보육, 빈곤 퇴치 목적의 1조5000억 달러 재정 지출을 추진하는 등 장기적으로 취약계층을 도우려는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도 재정이 추가로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큰 정부’로 가는 것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재원 문제는 위기가 한창일 때는 논란이 안 됐지만 이제부터는 논란이 불가피하다. 현재 재정 확장을 선도하고 있는 바이든 정부는 대기업이 해외에 묻어둔 이윤에 대해 과세하고 부유층의 양도 차익에 대해 근로소득과 같은 세율로 과세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 대기업과 부유층이 세금을 안 내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대결전’이 불가피할 모양새다. 유럽 등 다른 나라들도 조만간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 코로나 위기가 재정 정책을 본격적으로 쓰는 계기가 된 것은 여느 선진국과 비슷하다. 2013년 이후 7년이나 디플레이션 위협에 직면했음에도 재정 정책을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코로나 위기가 그런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다. 거기에다 질병 관리를 잘함으로써 작년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었다. 올해는 세계 경기 회복과 내수 반등에 힘입어 예상보다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기대되고, 그 기조가 이어진다면 조만간 그동안 쌓인 디플레이션 압력을 털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충격이 취약계층에 집중되는 것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사회안전망 강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재정 지출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도 ‘큰 정부’로 가는 게 불가피한 것이다. 그에 소요되는 비용은 경기 부양에 드는 비용과 달리 지속적인 것이다. 증세 내지 사회보험제도 개혁 같은 정부 수입 증대 방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수입을 늘리기에 앞서 정부의 지출 중에 줄일 수 있는 것은 없는가. 아마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한국은 과거에도 경제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불가피한 지출은 늘리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인 적이 있다. 그것이 한국의 재정 상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건전한 이유 중 하나다. 물론 그때와 지금 사정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국가 우위’ 상황이 체질화된 한국의 사정으로 보아 그럴 여지는 분명히 있다. 실제로 현 정부도 필요한 지출을 늘리면서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 왔다. 따라서 그런 방침을 명시적으로 내세우고 그 바탕 위에서 ‘큰 정부’를 추진하는 국민적 합의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은 원래 재정이 건전한 데다 코로나 위기로 투입한 재정도 다른 선진국보다 적어서 위기 이후 상대적 건전성은 더 올라갔다. 거기에다 아직 위기 상황을 벗어난 것이 아니므로 디플레이션 위협이 사라질 때까지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나 경기 회복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상황이므로 장기적 재정건전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는 있다. 코로나 위기가 한창일 때는 논의조차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그런 상황은 아니다. 그런 논의는 정부 지출 구조에 대해 검토하는 데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큰 정부’를 지속 가능하게 하는 첫걸음이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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