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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Against TV football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우리의 축구팀과 도시를 위해 기도합시다.” 한 교회의 예배시간. 성도들 사이로 기도가 이어진다. “축구가 우리 공동체에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게 하소서. 축구가 어떻게 우리를 결속시키는지 보여주소서.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못 내더라도 분노와 격분을 헤쳐나가게 도와주소서. 좌절을 이겨내도록 도우소서.” 영국 잉글랜드 소도시 선덜랜드의 프로축구단 선덜랜드 AFC를 다룬 다큐멘터리 ‘죽어도 선덜랜드’의 장면이다.

나는 2000년대 초반 청소년기를 보낸 ‘월드컵 세대’ 축구팬이다. ‘도쿄대첩’을 보고 대표팀 신문기사를 스크랩하다 한일월드컵 뒤 당시 위성방송 영어 중계로 유럽 축구를 처음 접했다. 단순히 높은 수준 때문만이 아니었다. 공장의 노동자나 귀족, 심지어 교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동체에서 유래한 팀의 역사가 대단해 보였다. 매 경기와 시즌에 목을 매고 평생 고향 구단의 일원으로 소속감을 갖고 사는 팬들의 열정과 자부심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최근 유럽 ‘슈퍼리그’ 사태가 일장춘몽으로 끝났지만 이번 시도가 목표하는 것은 분명했다. 축구단이 역사적으로 근거를 둬온 각 연고 지역 팬과 공동체가 아닌, 중계로 경기를 접할 나 같은 ‘TV 축구팬’이 보고파 할 경기를 만든다는 포부였다. 코로나19로 연고지 관중 수입이 0에 수렴하는 상황에서 매 시즌 천문학적 돈을 들이는 거대 구단으로서는 현상 유지를 위해서라면 구상할 법한 일이었다.

십수 년 전부터 세계적 인기가 높아진 잉글랜드 프로축구에서는 경기를 아시아 지역 시간대에 맞춰 옮기는 등 비슷한 맥락의 일이 빈번했다. 이를 향한 현지 팬들의 반발도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다만 이번 슈퍼리그 사태는 그 의도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 데다 백 년도 넘게 정착된 현 체제를 크게 흔드는 일이었다. ‘죽어도 선덜랜드’에서 묘사된 대로라면 왜 현지 팬들 사이에서 그렇게나 격렬한 반발이 터져 나왔는지도 이해할만하다.

사실 프로 스포츠가 수익을 위해 어떤 팬층을 겨냥할지, 어떤 문화를 지향할지는 옳고 그름의 영역이 아니다. 연고지 중심 전통이 축구의 본질이라는 일부 이야기도 어떤 주장의 근거가 되기엔 감상적이고 빈약한 논리다. 다만 함께 유럽 축구를 오래 본 한 친구는 이번 일을 보며 이율배반적 감정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 같은 해외 팬들을 겨냥한 시도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자체가 어린 시절 선망한 문화의 일부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프로 스포츠에서 연고지 중심의 팬 문화는 ‘팬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린 지 오래다. 20세기 방송 중계의 등장이 그 단초를 제공했다면, SNS 시대는 이를 답하기 더 까다롭게 했다. SNS 덕에 사람들이 스포츠를 접하는 통로는 ‘직관’ 외에도 다각화됐다. 이제 팬들은 돈을 내고 휴대전화 속 유료앱으로 스포츠를 접한다. 방송 중계와 하이라이트에 그치지 않고 인스타그램·유튜브 영상과 이미지를 소비한다.

연고 문화가 유독 강한 축구에는 그 질문이 더 도전적으로 다가온다. 경기장에 갈 수조차 없는 코로나 사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방송 중계와 SNS 2차 콘텐츠로 수익만 충분히 낼 수 있다면 연고지 팬과 공동체는 아무래도 상관없나.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단순히 가짜 소음이나 그래픽으로 간단히 대체될 수 있는 존재인가. 슈퍼리그 사태는 축구 중심지 유럽에서 다시 그 질문을 묵직하게 던진 셈이다.

“TV 채널마다 가득한 저 먼 곳의 90분의 이야기는 전혀 와 닿지 않아. 우리만의 거리 위에 너와 나의 집에서 우리들의 드라마를 계속 이어 나가자.” 팬들 자부심이 세기로 유명한 K리그 명문 수원 삼성 응원가 ‘Against TV football(TV 속 축구에 맞서)’의 가사다. 노래를 들으며 다큐멘터리 속 선덜랜드 팬들, 또 슈퍼리그 반대 시위대의 모습이 묘하게 겹쳤다. 정답이 없다는 건 알지만, 내게 익숙한 축구의 모습에는 이 노래가 더 가깝게 다가왔다. 물론 감상적 생각이라는 건 잘 안다.

조효석 문화스포츠레저부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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