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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부동산 꼰대, 암호화폐 꼰대

고세욱 경제부장


4·7 재보궐선거에서 1년 전 총선과 180도 다른 결과가 나온 건 가격이 급등한 부동산 문제가 가장 컸다. 여기에 집권 세력이 부동산 정책을 추진하면서 오만하게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꼰대 마인드에 대한 염증과 환멸도 투표 민심 기저에 깔려 있었다고 봐야 한다.

정부·여당 인사들은 말로는 주택 약자들을 보호한다면서 집에 대한 욕망은 추구해선 안 되는 금기인 양 국민을 훈계해왔다. 장하성 주중 대사가 청와대 정책실장 당시 “강남 살아봐서 아는데, 모든 국민이 강남에 살 필요 없다”고 한 말은 부동산 꼰대 어록 중 으뜸이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영끌’로 집을 사는 30대와 관련해 “곧 부동산 효과가 나오는데 안타깝다”고 했다. 그 후 이달 초까지 서울 아파트 값은 평균 1억원이나 올랐다. 2030이 부동산 시장에서 느끼는 절박함에 대한 공감 능력은 없다시피 했다.

이들의 꼰대질은 ‘내로남불’과 결합되며 악성이 됐다. 역세권의 고급 아파트에 사는 한 여당 의원은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고 강조했다. 실수요자 보호를 그리 강조하던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7월 전세 5% 상한의 임대차법이 시행되기 이틀 전 전세보증금을 14% 올렸다. 그런 뒤 TV에 나와 “전세대란으로 불편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재보선 참패 후 민심의 무서움을 깨달았을까. 정부·여당은 부동산 세제나 대출 등에서 출구 전략을 고심하는 등 바짝 엎드렸다. 하지만 꼰대 DNA가 어디 쉽게 없어지나. 올해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암호화폐 이슈에 기어이 끼어들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22일 국회에서 “사람들이 (암호화폐에) 많이 투자하니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도 했다. 올해 암호화폐 거래에 나선 약 250만명의 투자자(금융위 자료)들은 졸지에 보호 가치 없는 철부지가 됐다.

암호화폐 열풍이 비정상적이긴 하다. 상장된 뒤 30분 만에 1075배나 폭등한 암호화폐가 생길 정도다. 다만 아무리 돈을 모아도 집 한 채 사기 불가능한 요즘, 어쩌면 유일한 자산 증식 수단으로 보고 암호화폐에 뛰어드는 청년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혀나 차는 게 정부의 자세는 아니다.

게다가 정부는 투자자 보호는 안중에도 없다면서 세금은 꼭 걷겠다 한다. 무슨 범죄단체 수익 몰수하는 식이다. 암호화폐 거래 규모가 코스피 시장을 넘기도 했다. 최소한의 룰이 필요한 때다. 미국 등 많은 선진국들은 암호화폐를 점차 대체자산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출범했고 암호화폐 거래소도 증시에 상장됐다. 동시에 제도적 정비와 규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암호화폐 기반인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로 부상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공시 같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도 외면한 채 암호화폐를 터부시하는 게 자랑할 일은 아니다.

현 정부의 특기인 내로남불에서는 자유로울까. 2018년 1월 국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경제 부처 소속 사무관의 절반가량이 암호화폐를 투자하거나 경험했다. 당시보다 열기가 더한 올해 어떨지는 쉽게 상상이 간다. 암호화폐는 공무원 재산신고 대상도 아니다. 정보와 인맥으로 무장한 공무원들이 앞에서는 암호화폐를 단속하고 뒤에서는 은밀히 투자하는 행태가 없을 거로 누가 확신하나.

정부가 꼰대 근성을 못 버리고 감놔라 배놔라 하면서 청년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멈출 때가 됐다. 재보선 결과는 “(위선과 내로남불이라는) 잘못된 길로 간 어른들에게 젊은이들이 (표로) 이야기를 해 준 것”임을 알아야 한다.

고세욱 경제부장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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