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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위안부 판결 이후, 정부의 역할은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전공)


지난 21일 일본군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인정해 1억원 배상을 명령한 1월 8일 판결을 완전히 뒤엎었다. 한국 법정에서 일본 정부가 피고가 될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인정해 각하 판단을 내렸다. 외교부는 일본의 책임 통감과 사죄를 촉구한 반면 일본은 지극히 타당한 판결이라고 환영하고 있다. 원고 측은 항소할 예정이지만 사법부의 최종 판단은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정반대 판결은 혼란스럽지만 그런 징후는 나타나고 있었다. 1월 판결은 전시 성폭력 단죄 등의 강행 규범을 상위로 두고 일본의 주권면제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판결 직후 외교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임을 상기한다고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사법부 판결이 ‘곤혹스럽다’ ‘현금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난처한 입장을 보였다. 잘못된 합의지만, 사실상 정부 간 합의로 재차 확인한 것이다. 게다가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는 직권으로 1월 판결에서 패소한 일본 정부로부터 소송 비용을 추심할 수 없다고 최근 결정했다. 국내 일본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 국제법 위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용수 할머니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주장하면서 한·일 양국 정상에게 호소하고 있다. 재판에 회부될 경우 일본의 잔혹한 전쟁범죄가 국제사회에서 드러나고, 위안부 제도가 국제법 위반임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65년 청구권협정과 2015년 화해치유재단 위로금 지급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이 유효한 점을 인정받을 수 있고, 최종 승소할 경우 일본의 공식 사죄 의무 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 정부가 합의해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시민단체도 반대 입장이다.

유사 사안에 대한 사법부 판결의 혼란, 피해자 요구와 시민단체 견해가 엇갈리면서 위안부 문제는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합의대로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이다.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한 것은 한국 측의 약속 파기이며, 잔금 56억원은 애당초 합의한 용도에 따라 사용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양성평등기금 103억원을 출연한 가운데 한·일 공동으로 유엔 전시 성폭력 프로그램에 사용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측이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1월 외교부 발표에서 알 수 있듯 정부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일 간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위안부 문제 해법은 반드시 찾아야 할 상황이다. 우선 당장 화해치유재단 잔금 56억원의 용도도 결정해야 한다. 그간 정부는 현실적인 해법을 수차례 일본 측에 제시했지만 일본은 국제법 위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이 일방적 억지 주장을 일관되게 늘어놓는 건 판을 깨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해결 전망이 부재한 채 한·일 관계는 완전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오죽하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공개적으로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했을까.

지금 이대로 문재인정부 남은 1년이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일본에 전적으로 양보하는 방식의 과거사 해결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피해자와 지원 단체, 그리고 정부 간 공식적 대화 기구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 가야 한다. 피해자와 시민단체, 학계 전문가, 정부 부처 관계자가 만나 궁극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더라도 그런 과정 자체가 매우 중요하다. 국무총리실이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면 된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 간 외교적 노력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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