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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학습-일-가족’의 선순환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지난해 신생아가 27만명에 그쳤다. 100만명을 웃돌던 반세기 전의 4분의 1 수준이다. 2012년 1.3명까지 반등했던 합계출산율은 0.84명(2020년 기준)으로 급락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3명)의 절반이다.

인구가 줄면 인구밀도가 낮아져 환경 훼손과 교통 혼잡이 완화되는 장점도 있다. 다만 지금처럼 그 속도가 가파르면 경착륙이 우려된다. 직격탄을 맞을 국민연금은 물론 교육·의료·병역체계, 산업구조와 신앙생활까지 충격이 불가피하다.

젊은 인구가 늘면 생산과 소비도 덩달아 증가하는 ‘인구배당’이 발생한다. 우리의 고도성장은 이런 인구배당이 큰 몫을 했다. 광복 후 환국 동포, 한국전 때 월남민과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그 동력이었다. 하지만 이젠 흐름이 뒤바뀌었다. 아시아개발은행은 한국의 인구배당이 적자로 돌아섰다며, 2035년엔 그 비중이 주요 20개국 중 가장 클 것으로 본다. 국제통화기금은 노동의 성장기여도가 한국에선 2026년 마이너스가 된다고 전망한다. 성장에 효자였던 인구가 거꾸로 걸림돌이 될 참이다.

고령화도 문제다. 한국은 OECD에서 아직 젊은 편이나, 2065년엔 생산가능인구(15~64세)보다 노인과 유소년이 더 많은 유일한 나라가 된다. 고령화는 생산성을 떨어뜨리며, 내수에도 악재다. 나이가 들수록 이사를 꺼리고 유행에 둔감해지며, 노후에 대비하느라 씀씀이가 준다. 그 탓에 우리 가계의 소비성향은 2000년 80.6%에서 2020년 68.4%로 꽤 낮아졌다.

핵가족화도 심각하다. 1인 가구 비중이 2000년 15.5%에서 2019년 30.2%로 두 배나 뛰었다. 머잖아 선두권인 일본과 호주마저 위협할 기세다. 특히 2015년까지 연 30만건을 웃돌던 혼인은 지난해 21만건으로 쪼그라들었다. 결혼이 필수라는 국민은 2010년 64.7%에서 51.2%로 줄었다. 결혼해도 자녀는 원치 않는 사람도 32%나 됐는데, 20대 이하에선 절반이 훌쩍 넘었다. 결혼과 출산 시기도 미뤄져 여성의 첫아이 출산은 2000년 27.7세에서 2019년 32.2세로 늦춰졌다.

가족은 나라의 비녀장과 같다. 미국 백인의 순자산 중간값은 흑인의 10배나 되나 백인 한부모가구는 순자산이 흑인 부부가구의 절반에 불과하다(2016년 소비자금융조사). 고등학교라도 마치고 일의 존엄성과 규율을 깨친 뒤 자녀를 갖기에 앞서 결혼하는 수순을 착실히 밟은 미국 흑인의 91%는 34세까지 가난을 벗었다(2017년 미국기업연구소). 달리 말해 고교 중퇴자, 미취업자나 미혼 부모는 중산층이 되기 힘들다. 미 하버드대 경제학과의 최연소 종신교수인 라즈 체티도 4000만 이상 부모와 자녀를 분석해 ‘안정된 가족’을 신분 상승의 촉매로 지목했다.

요컨대 저출산 해법은 ‘학습-일-가족’의 선순환이다. 출산 장려금이나 아동수당은 가성비가 너무 낮다. 우리를 비롯해 여러 나라 경험이 뒷받침한다. 공교육 정상화, 번듯한 일자리 창출, 집값 안정, 믿고 맡길 보육이 관건이다. 1990년대 이후 스웨덴, 덴마크와 핀란드처럼 학교 자율과 학생 선택권을 되살려야 한다. 그들의 학업 성취도와 인적역량이 뛰어난 건 우연이 아니다. 수급 엇박자인 대학 전공도 개편해야 한다. 취학연령을 낮추고 모병제로 바꾸며 온라인 개방학습 등을 강화해 ‘묻지 마 진학’을 줄이면 첫 취업과 결혼·출산을 앞당길 수 있다.

규제·면허·지원에 기댄 기득권을 없애면, 4차 산업혁명에 발맞춘 새 일자리가 생긴다. 엄격한 고용 보호와 강성 노조에 발목이 잡힌 인력 이동과 재배치도 원활해져야 한다. 어정쩡한 공공자가주택보다 실수요자가 원하는 집을 공급해야 집값이 잡힌다.

제한된 인력이나마 한껏 가용하려면 ‘일하는 복지’가 절실하다. 미국에선 복지수혜 기간의 상한과 근로 의무가 신설되자 1996년부터 18년 연속 한부모가구의 빈곤율이 하락했다. 2014년 미 메인주는 자녀 없는 건강한 18~50세가 식비 보조를 타려면, 일하거나 직업훈련을 받거나 마을 공공서비스를 수행토록 했다. 그랬더니 수급자가 80%나 줄었다. 이민 문호도 넓혀야 한다. 영국 옥스퍼드대 난민연구소에 따르면 이민자는 복지와 사회통합에 끼치는 부담보다 남다른 근로 의욕이 유발하는 순기능이 더 크다. 우리 말과 문화에 친숙한 외국인 동포의 복수 국적부터 허용해 보자.

박재완 성균관대 명예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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