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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춘추] 2022년은 ‘이사망’ 대선

손병호 논설위원


요즘 정치권에선 내년 대선의 의미 또는 시대정신이 뭐냐는 게 제일 관심거리다. 여야 나름대로 생각하는 시대정신도 있다. 야당에선 현 정권의 내로남불과 무능에 대한 심판, 오만과 독선 종식 등이 대선의 의미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반대로 여당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여당이 야당보다 낫다’며 위기 극복을 위한 정권연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개혁 시즌2’ 시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시대정신이 되기에는 우리 사회가 그렇게 한가롭지 않은 것 같다.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위기적 현상들을 감안했을 때 내년 대선은 정권교체, 정권연장이라는 정치적 문법이 아니라 ‘이사망’을 극복하는 대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사망은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을 넘어 아예 이번 사회가 망했다는 신조어다. LH 직원들과 공직자들의 땅투기 사태와 돈이 아니라면서도 과세부터 하겠다는 가상화폐 정책 등을 보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런 인식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비단 젊은이들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다. 겨우 마련한 집 한 채를 가진 사람들조차 만만치 않은 보유세를 내야 하는 현실, 아예 집이 없는데 급등한 전월세를 부담해야 하는 이들도 이사망의 상실감에 빠져 있다. 갈수록 커지는 소득 불평등도 이사망 인식을 키우는 요인이다. 한쪽에선 소상공인과 개인들의 파산 등 빚잔치가 벌어지고 있는데 대기업과 금융권, IT업계 쪽에선 억대 연봉과 성과급 잔치로 떠들썩하다. 점점 커지는 교육격차, 회복할 기미가 안 보이는 코로나 일상과 더딘 백신 수급, 좁은 취업문과 계속 줄어드는 좋은 일자리 등도 이사망 자조(自嘲)를 확산시키는 요인이다.

이사망 인식이 계속 확산되면 대선 판도도 바꿔놓을 개연성이 높다. 그런 좌절에 내몰린 유권자들은 자신을 그런 열패감에서 탈출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지도자, 그것도 신속히 탈출하도록 손에 잡힐 듯한 명확한 솔루션을 가진 대선주자에게 관심을 쏟으리라 본다. 이사망 시대 정치 소비자들은 본인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해줄 사람을 원하지 정권심판론이나 집권의 연속성 등을 떠드는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정권교체나 정권유지는 여야 정치인들을 위한 게임일 뿐 국민을 위한 게 아님을 다 알고 있다. 아울러 국민통합이니, 개혁이니, 혁신이니, 경제 전문가니 하는 뜬구름 잡는 식의 말잔치보다는 특정 문제점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지도자로 반길 가능성이 높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4년 전 혜성처럼 나타나 정권을 잡은 것도 그가 아무도 얘기하지 않던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들을 콕 집어내 구체적인 솔루션까지 제시하는 ‘준비된 해결사’였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의 인식이 이렇게 달라져 있으면 우리 대선 풍경도 많이 달라져야 할 텐데 지금 보여지는 모습은 여전히 과거 그대로다. 구식도 이런 구식이 없다. 아직도 집토끼한테 ‘신고식’을 치르려고 영호남 성지(聖地)를 쫓아다니는 게 주된 행보다. 앞선 대통령들이 거쳐갔다는 명당 자리에 대선 캠프를 꾸리고, 의원들 끌어다가 캠프의 세를 과시하는 게 자랑처럼 돼 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닥친 문제점들에 대해 본인의 솔루션을 제시하지는 않고, 상대 후보의 실수를 드러내고 오점을 부각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키우려 한다. 국민을 상대하지 않고 상대 당 후보, 당내 경쟁 후보를 상대하려고만 하니 이사망의 울림이 들릴 리 없다.

이번 대선마저 그런 식으로 치르면 정말 우리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대선은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 대선을 그 사회, 그 시대가 처한 문제점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후보들 간 정책 경쟁을 통해 최고의 솔루션을 찾아내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유례없는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점점 커지는 이사망 절규에 반드시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 이번에도 영호남이니 충청이니 하는 지역 구도에 휩쓸리거나 과도한 신상 털기와 과거 일에 대한 잘잘못만 따지면 우리 사회가 퇴행할 수밖에 없다. 이번 생은 망했다거나 이번 사회는 망했다는 말, 참 무서운 말 아닌가. 이런 좌절의 언어가 유행한다는 건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다. 이번 대선에서 이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면 거대한 저항을 부를지 모른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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