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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백신접종은 흑과 백이 아니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사회학과


백신을 둘러싼 마음가짐은 다양하다. 정부가 자가격리 면제 운을 떼자 접종 완료를 앞둔 부부는 신혼여행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1, 2차 접종을 마친 23만명 국민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훔쳤을 거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이 할당된 경찰과 소방 공무원 표정은 사뭇 다르다. 조금 버티면 좀 더 나은 백신을 맞을 것 같은데 위에선 빨리 맞으라고 성화다. 화이자 맞을 날을 애타게 기다리는 75세 이상 노인들의 한숨은 남 일 같지 않다. 딴 나라 사람들이 백신여권 쥐고 지구촌을 누빈다면? 연말연시 길거리 축제에 마스크를 써야 한다면?

확진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던 K방역! 선진국이 고꾸라지고 나랏문을 걸어 잠글 때 우리는 버텼고 경제도 숨을 쉬었다. 마침내 우리도 선진국이 됐고 동아시아식 민주주의도 꽤 괜찮다는 생각도 했다. 확진자 사생활 침해나 집회시위 자유 제한 정도야 대의를 위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국가의 품격을 찾으려 고민하는 서로에게 우리는 건투를 빌었다.

우리는 ‘K방역 보유국’이니깐! 이랬던 국민이 이제 바뀌었다. 하루 감염자 열 명쯤 나오는 호주가 백신 쟁여놓지 못한 건 그렇다 치자. 여전히 확진자 600명씩 나오는 대한민국은? 뭘 믿고 아직 접종률 6.5%인가. ‘K방역은 시효가 끝났다!’. 내 말이 아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의 단언이다.

이 모든 게 백신을 정치화한 탓이라는 시각도 있다. 대통령이 직접 ‘백신의 정치화를 중단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마치 백신 확보에 대통령이 뒷짐 지고 있었던 것처럼 왜곡하는 세력에 대한 엄중 경고였다. 틀린 말 하나 없다. 대통령은 백신 확보를 수백 번쯤 외쳤을 뿐 아니라 직접 모더나 최고경영자와 통화해 2000만명분을 약속받았다. 백신을 충분히 확보했으니 걱정말라 다독였고 내친김에 러시아 백신 검토도 지시했다. 그뿐이랴. 미국의 백신 사재기도 성토했다. 이 정도 핀잔쯤이야 누가 뭐라 할 건가.

아뿔싸, 약속한 4, 5월이 되도 눈 빠지게 기다리면 모더나는 오지 않는다. ‘백신이 왔다’ 소리쳐도 국민은 잘 믿지 않는다. 외교수장을 통한 ‘백신 스와프’ 제안에 미국은 곁눈질 하나 주지 않는다. 부총리를 통해 화이자 백신 2000만명분 추가계약을 공개해도 안도의 한숨 소리는 작게 들려올 뿐.

당국자들도 믿음을 못 주긴 마찬가지다. 상반기 접종 목표 1200만명을 내세웠지만 과연 수급이 가능할지 불안하고, 사실 목표가 ‘1차 접종’ 플러스알파임을 확인하면 뭔가 께름칙하다. 어리둥절한데 속 시원한 설명도 없고 사과도 없다. ‘양치기 소년’ 우화가 머릿속을 맴돈다. 그래도 절대로 꺼내면 안 된다. ‘백신 정치화’의 주범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불신의 불똥은 여기저기로 튄다. 백신 접종 설득이 어려워지고 백신 기피가 뚜렷하다. 사회 필수 인력 접종자 대상 17만7000여명 중 접종 예약·동의를 한 사람은 13만3000여명으로 75%에 그쳤다. 국민은 백신 기피라는 수동적 감정을 ‘백신을 선택할 권리’라는 적극적 마음가짐으로 고쳐먹고 있다. 하나의 새로운 권리가 공론의 장에 머리를 디밀고 있다. AZ 백신의 경우 희망 접종자부터 먼저 맞게 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왜 노년층은 화이자이고 청년층은 AZ인지 사실 좀 헛갈린다. 스스로 취약계층으로 자조하는 청년들이 아니던가.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들은 백신이란 흑과 백의 문제가 아니라고 강변한다. 집단면역이 아니라도 점진적 접종이 사회에 큰 유익이 된다고 말한다. 신뢰와 불신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사실이다. 정부 입장이든 그 반대편이든 흑백 논리에 경도되는 동안 점진성의 유익은 학습되지 못했다.

응용물리학자 손승우 교수는 “AZ 백신 효과(70%)가 모더나 및 화이자(94~95%)보다 낮더라도 접종속도를 높일 수 있다면 감염자 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전한다. 서울의대 오주환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에게 접종을 맡기고 방역 드림팀에 청년들을 폭넓게 참여시키자”고 주장한다. 필요하면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까지 검토하자고 한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귀한 제언들이다. 이참에 신혼부부에게 우선권도 줬으면 한다.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도 충분히 배려하자.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 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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