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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 모든 눈물은 똑같다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진실은 상대적이고 역사적 상황에 따라 변한다.’ 이것은 진보 이데올로기의 핵심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021년 2월 CNN이 주최한 타운홀 미팅에서 중국 위구르 대학살에 대한 질문에 “문화적으로 각 나라와 그 지도자들이 따라야 하는 각기 다른 규범이 있다”고 답했다.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분명하고 명료했다. ‘문화적 차이’라는 명분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그의 발언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거칠게 비난을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깊은 침묵만이 드리워졌다. 국제관계에서 현실주의 모자를 쓰고 바라볼 때 바이든 발언은 나름 일리가 있다. 원칙과 보편적 가치는 때때로 현실에 의해 제약받을 수는 있다. 여러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세상에서 인권과 전략적 고려라는 이분법적 사고보다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바로 현실주의 관점이다. 하지만 그 모자는 어색하고 불편하다. 여기에서는 인간이라는 단어가 들어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의 작동원리는 각국의 끊임없는 국익 추구, 그 자체라고 배웠다.

첨단산업에 중요한 희토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언제든지 인권이라는 이슈는 잠시 제쳐 놓아도 되는 것인 양 암묵적인 동의가 있다. 콩고민주공화국에는 코발트가, 볼리비아에는 리튬이 세계 최대로 매장돼 있다. 이 두 물질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전기차 등의 핵심 부품인 리튬이온전지의 필수 원료다. 그런데 누가 이런 물질을 채굴하는가? 전기차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우리가 영상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5, 6살밖에 되지 않은 콩고의 어린이들이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사용해 그 치명적인 물질을 채굴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수의 콩고 어린아이들은 리튬과 코발트 채굴 중에 발생한 치명적인 독성을 들이마시다가 발병한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혹자는 콩고의 어린아이들이 이러한 강제노동조차 없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애써 외면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 역시 불편하다. 콩고와 볼리비아뿐만 아니라 북한, 미얀마, 발루치스탄은 선진국의 전략물자에 필요한 희귀 광물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다. 이 모든 국가에 대해 인권문제는 가끔 정치적 이슈로 제기만 될 뿐 왜 준수해야 할 가치로 강요되지는 못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현실주의적 세계관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it depends)고 답한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단어에 ‘상황에 따라 다르다’라는 단서가 추가되면 그것은 무의미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다. 북한 인권문제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넘어가면 그만인가? 우리는 비핵화라는 지상 목표를 위해서는 북한 인권문제를 외면해도 되는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오늘 침묵한다면 내일도 침묵할 것이다. 누군가는 그 침묵을 도덕적 중립이라고 한다. 그러나 198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젤은 “도덕적 중립은 피해자가 아니라 억압자를 도울 뿐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했다.

김정은 체제의 폭정과 탄압에 대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마치 계란을 벽에 던지는 것으로 헛수고를 거듭하는 것처럼 보인다. 계란이 벽을 결코 부수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 벽을 더럽히기 위해서라도 계란은 계속해서 던져야 한다. 물론 이 게임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필자는 레닌과 함께 이기는 것보다 소크라테스와 같이 지는 것에 더 의미를 둔다. 진보주의가 주장하는 ‘상대적’ 원칙과 바이든이 말하는 ‘다른 규범’은 착각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하는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실은 보편적이다. 언제나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김진우 세르모국제연구소 소장 (전 미국 국무부 선임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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