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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윤석열의 오판, 정권의 오판

지호일 정치부 차장


2019년 12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따로 만난 적이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에 대한 수사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였다. 왜 가시밭길 수사를 밀고 가는지 물었다.

“역대 정권을 보세요. 대통령 임기 말 혹은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어김없이 혹독한 수사 바람이 불었어요. 부패 싹이 보여도 변죽만 울리거나 모른 척 넘어다가보니 나중에 곪아 터진 거지요. 나는 그 고름을 일찍 짜내려 한 것이고, 그게 검찰의 책무라고 봤는데….”

그는 “정권 입장에서도 환영할 만한 일이라 여겼지만 지금 하는 걸 보니 문재인정부도 과거와 다를 게 없다”며 한숨 쉬었다. “충정이었다”는 말도 몇 차례 언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과적으로 고름을 짜내겠다는 윤석열의 판단은 틀렸다. 조국은 그저 고름이 아니라 살갗 밑으로 깊숙이 뿌리내려 정권과 한 몸 같이 된 존재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애초 외과수술로 도려낼 성질이 아니었던 거다. 이 여파로 1년여간 양쪽의 전면전이 지속됐다. 더 이상 정권의 칼이 아니게 된 윤석열은 손발이 잘린 채 고립됐고, 검찰로는 권력의 분노 가득한 개혁 광풍이 몰아쳤다.

조국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조국은 정권과 같은 정신세계를 공유하며 여전히 건재하다. 윤석열의 가족 의혹 기사를 자신의 SNS에 올리면서 ‘내가 옳다’는 시그널을 계속 내보내고 있다. 4·7 재보선 패배 이후 ‘조국 수호’를 반성했던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이른바 ‘문파’(문 대통령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격에 곧바로 항복 선언을 했다. “어렵게 타오른 당 쇄신의 불길이 급속도로 식고 있다”(김해영 민주당 전 최고위원)는 탄식도 울림이 작다.

이제 ‘조국 수호’의 구호는 ‘어준 수호’로 옮겨간 모양새다. TBS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가 야당의 집중 타깃이 되자, 여당 중진들이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안민석 의원), “김어준 귀한 줄 알아야 한다”(정청래 의원) 같은 칭송과 함께 호위무사를 자처했다. 김씨가 송출하는 온갖 가짜뉴스와 음모론에는 눈 감아 버린다. 맡은 역할은 달라도 김씨와 조국은 친문을 한 데 묶는 상징인 것이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의원들마저 문파라는 전차의 위세에 주눅 드는 사이 민주주의의 한 축인 정당정치는 ‘문파정치’로 변질되는 중이다. 강준만 교수는 이를 “부족주의의 노예가 된 한국 정치”라고 진단하면서 “책임을 질 수 없는 익명의 감성 집단이 지배하는 국정 운영은 매우 위험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 바 있다.

그런데 정권도 오판한 것이 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의 별난 기질과 줏대, 강한 맷집을 과소평가했다. 과거의 검찰총장들처럼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감찰에 들어가면 알아서 물러날 것으로 기대했겠지만 그는 ‘웬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솝우화 속 분노의 사과처럼 때리면 때릴수록 정치적 덩치를 키우더니 총장직을 버릴 무렵에는 유력 야권 대선후보로 올라섰다. 보수진영의 적이던 윤석열이 보수의 대안이 된 아이러니는 정권이 만든 셈이다. 문 대통령이 여권과는 이질적인 윤석열을 ‘적폐청산의 최종병기’로 세운 순간부터 정해진 숙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대선 구도는 이런 쌍방의 오판이 빚어낸 결과다. 여권에서 누가 최종 결전장에 오르든, 윤석열이 중도 탈락하고 다른 이가 야권 대표주자로 나서든, 내년 대선은 조국과 윤석열의 충돌로 생긴 자기장 안에서 치러질 터다. 분명한 건 문파가 배타적 결속체가 될수록, 이에 반발하는 원심력 역시 거세질 것이란 점이다. 이런 징후는 여권 내부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호일 정치부 차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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