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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칼럼] 이재용 사면과 대통령 통치행위


사면 찬성론은 반도체 위기를
반대론은 법치 훼손을 우려한다
극단의 여론은 고질적 자화상

헌법에 사면권이 규정된 이후
모든 정권, 사면을 단행한 전력
폐지론도 비등했으나 존치돼

옳고 그름의 문제 넘어선 정치
대통령 고유의 통치행위이자 몫
판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좀 복잡 난해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또한 논쟁적 주제이기도 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재벌 특히 ‘삼성’은 뜨거운 감자다. 때론 강한 휘발성을 보이기도 한다. 재벌 그것도 삼성인 데다 심지어 최고경영자와 관계된 일이니 찬반 격론이 뜨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여기에 정치적 논란까지 더해지면서 찬반은 접점 없이 극단으로 갈린다. 중구난방 그 자체다. 한데 정답이 없다.

이 부회장 사면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나름 논리와 근거가 있다. 달리 말하면 어떤 논리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의미다. 찬성론은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반대론은 집권당과 진보적 시민단체 쪽에서 주로 나온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수와 진보의 진영 다툼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가뜩이나 흑백논리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처럼 극단화된 여론은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한다. 종종 경험하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고질이다.

찬성논리엔 반도체 위기론이 깔려 있다. 반도체 패권주의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고경영자 부재로 투자가 적기에 이뤄지지 않으면 어렵사리 쌓아올린 반도체 1위 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긴급함을 강조한다. ‘정신승리’만으로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유지하며 살아가긴 힘들다는 논리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 세력의 반대에도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한·미 FTA를 체결한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지난달 26일 청와대에 전달된 경제 5단체장의 사면 건의서는 이런 이유들로 구구절절하다. 그러면서도 죄를 용서하자는 게 아니라 국민화합과 국가경제를 위해 기회를 주자고 했다. 종교계 일부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사면찬성론을 편다. 현실적 필요성이 있는 데다 이를 인정하는 국민 여론 또한 만만찮아 무시하기 어렵다. 다만 명분에서 반대론을 압도하진 못한다.

반대쪽 논리는 상대적으로 명쾌하다. 법치의 훼손을 든다.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이다. 돈과 권력이 법을 지배한다면 그것은 민주사회가 아니라 금권사회라는 건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해야 하고, 이 부회장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견해다. 이것이 사법정의에 부합한다는 주장이다. 원론적으로 틀리지 않는다. 명분도 있다. 착하게 살아야 하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데 누가 감히 반대할 것인가. 죗값은 부자나 빈자나, 약자나 강자나 모두 같아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 부회장 사면의 당·부당을 따지기 전에 헌법 제79조에 규정된 대통령 사면권은 1948년 제정된 이래 역대 모든 통치권자들이 행사했고, 그때마다 법치 훼손 논란이 있었다. 절대군주시대 유물이라는 비판과 함께 폐지론도 비등했다. 대표적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이 그랬다.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 사면권 그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분명 모순점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 골간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미뤄 필요성은 인정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반대자의 주장대로라면 대통령의 사면권 자체가 근거를 잃는다. 이런 점으로 미뤄 사면권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이렇듯 이 부회장 사면 문제는 칼로 두부 자르듯 하기 어렵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박수 소리만큼 비난 목소리도 클 것이다. 이는 삼성에 대해선 긍정과 부정의 상반된 인식이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양가적이다. 다만 대놓고 드러내길 꺼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물론 본질은 아니다. 또한 삼성 관련 이슈의 경우 사석에서의 주장과 공석에서의 주장이 다른 경우를 종종 본다. 그만큼 예민하다. 또한 이성보다는 감성 또는 비이성이 지배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렇다고 이것이 잘못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흔히 정치란 정답이 없을지라도, 답을 찾거나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한다. 종종 옳고 그름의 문제를 넘어서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수가 ‘노’라고 할 때 ‘예스’라고 말해야 할 때도 있다. 물론 그 전제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서다. 리더가 짊어져야 할 숙명이고, 고독한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다를 리 없다. 역설적이지만 법의 최대치는 민주주의의 최소치와 맞닿아 있다. 법에 의한 지배가 마주하는 한계다. 결론적으로 사면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다. 전적으로 대통령의 몫이다. 다만 판단은 빠를수록 좋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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