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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민유방본 본고방녕

라동철 논설위원


서울 동작구 공작산 기슭에 자리잡은 국립서울현충원은 주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대통령과 3부 요인, 정당 지도자, 국무위원을 비롯한 주요 기관장들은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을 현충원 참배로 시작하는 게 관례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자신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겠다고 다짐하는 중요한 정치적 의식이기 때문이다.

주요 인사들은 현충원을 방문하면 방명록에 글을 남긴다. 짧게는 10여 글자, 길게는 수십 글자의 간결한 글이지만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날짜나 맞춤법이 틀리거나 엉뚱한 내용을 적어 구설에 오르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방명록 글은 대부분 심사숙고의 산물이다. 언론의 주목도가 높고 자신의 철학이나 의중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리저리 생각한 끝에 적당한 문구를 준비해 온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당선 다음 날인 3일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현충원을 참배했다. 송 대표는 현충원 방명록에 “民惟邦本 本固邦寧(민유방본 본고방녕), 국민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번영합니다”라고 적었다. ‘민유방본 본고방녕’은 중국 고전 서경(書經)에 나오는 문장인데 국민(백성)이 국가의 뿌리이자 중심이라는 민본(民本)사상이 집약돼 있다. 고등학교 시절 은사인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통해 알게 된 후 정치적 가치관으로 간직해 왔다고 한다.

송 대표는 현충탑을 참배한 후 김대중 김영삼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고 고인들의 업적을 기리는 글을 방명록에 남겼다. 집권 여당 대표로서 첫 발을 내디디면서 국민을 정치의 중심에 두고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민생은 뒷전이고 정치적 상대편을 적대시하며 사사건건 다투는 사생결단식 대결 정치에 피로감, 혐오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송 대표의 글이 정치적 수사에 그치지 말고 민주당 정치에 녹아들어 현실 정치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길 바라는 건 헛된 기대일까.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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