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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 여성이 군대를 말하자면

이영미 영상센터장


4·7 재보선 패배 후 여권에서 쏟아진 ‘이남자’ 구애 정책을 두고 논란이 많다. 군가산점제·여성할당제가 재등장하고 와중에 남녀평등복무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군가산점제는 20여년 전 퇴출된 퇴행적 제도, 여성할당제는 국회의원급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양성평등채용목표제라면 수혜자 다수가 남성이니 시비 걸 게 없다. 반면 여성징집제에는 뜻밖에 여지를 둔 반응이 많았다. 이슈 제기의 맥락은 불순하지만 논의해볼 만하다는 식의 전문가 코멘트가 꽤 나왔다. 여론도 팽팽했는데 찬성은 젊을수록 많았다. 한 여론조사를 보면 여성도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하자는 데에 20·30대는 55% 가까이 ‘찬성’이라고 답했다.

찬성 논리는 명쾌하다. 왜 남자만 고통 받나. 남녀가 평등하니 고통도 평등하게 분담하자. 혐오론을 걷어낸 요지는 이렇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요즘 20대에게 군대는 징벌로 여겨진다. 고통의 이유는 모르겠고, 대가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반대편에서는 여성의 이중굴레를 지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미끄러지는 여자들 어깨에 군대라는 짐을 더 얹고 뛰라고 하면 고꾸라질 뿐이다. 우리 군이 젊은 여성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평등해지려면 여자도 군대를 가라는 주장이 황당한 건 사실이다. 여성이 그 오랜 세월 차별 받은 게 ‘군 면제’ 때문일 리는 없다. 하지만 세상이 불평등한데 군대까지 가야 하느냐는 반박 역시 수세적으로 들린다. 징병제가 갖는 ‘차별과 배려’의 기묘한 조합도 불편한 지점이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남성만 징집 대상으로 한 병역법을 합헌으로 판단하며 신체적 차이와 여성의 생리현상을 감안했다고 적시했다. 집단으로서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으로 전투에 더 적합하기 때문에 군의 여성 배제는 이유 있는 차별이라는 논리였다. 어느 법률가는 이를 ‘수혜적 차별’이라는 창의적 언어로 표현했다.

여성 군 간부들이 온갖 병과에 도전하며 고군분투하는 2021년, 남녀의 신체 차이를 업무상 차별과 직결한 게으른 결론을 계속 용인해도 좋은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여자가 군대를 가는 게 평등인가, 안 가는 게 진짜 평등인가’ 묻고 또 묻는 수준의 논쟁이 의미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 질문을 바꿔보면 좋겠다. 군(軍)이라는 중요한 사회제도에서 여성의 존재와 목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게 군에, 우리 사회에 득이 되는 걸까.

그동안 여성은 군대에 안 갔고, 군에 대해 발언할 권리도 함께 박탈됐다. 기꺼이 포기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문제 없이 굴러왔다면 모르겠다. 20대는 예나 지금이나 청춘을 싼값에 동원한 군대를 비난한다. 군대 가기 싫은 요즘 애들의 불평인가. 그간 주워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군대는 문제적 조직인 게 맞다. 여자가 뭘 아냐고? 맞다. 모른다. 그렇다면 다녀와서 잘 아는 이들은 군대가 바뀌도록 뭘 한 걸까. 군필자들이 현역병 처우 개선을 위해 나섰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영내 휴대전화 허용 기사에 “요즘 애들 빠져서” 이런 댓글이나 다는 게 예비역이다.

여자들도 발언권을 가질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양현아 교수가 말한 성원권(membership)이 선행돼야 한다. 여성징병제는 한국 사회에서 군 멤버십을 획득하는 거의 유일한 길로 보인다. 군대를 말하려면 군대 가라는 게 집단요구다. 군대 가는 것도, 전혀 다른 성을 군대에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을 거라 짐작된다. 논쟁적이고, 심지어 위험한 일일 거다. 그래도 군대를 양성 모두의 통제에 두는 시도는 해봤으면 좋겠다. 언젠가 여성이 군 멤버십을 획득하면 그때 문제적 조직, 대한민국 군대의 설계와 운영을 따져볼 일이다. 이번엔 여자들도 함께.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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