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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부부유별은 性 윤리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옛날에는 부부를 인륜의 시작이라고 봤다. 모든 인간관계가 부부관계에서 파생되기 때문이다. 부부가 있어야 부모자식과 형제자매가 생기고, 다른 사람의 부모형제와의 관계에서 어른과 아이, 임금과 신하, 벗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 다양한 인간관계를 규율하는 다섯 가지 기본 윤리가 오륜(五倫)이다. 그런데 오륜 가운데 가장 오해받고 있는 것이 부부유별이다. 부부유별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부부간에 구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어사전에는 ‘남편과 아내의 도리는 서로 침범하지 않음에 있음’이라고 했다. 남편과 아내가 영역을 나누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인데, 이건 정확한 풀이가 아니다. 서로 간섭하지 않을 거면 뭐하러 부부가 되었는가. 전통적인 해석은 그렇지 않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창작이 아니라 전부 조선시대 학자들의 설명에 근거한다.

오륜은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이다. 부부관계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윤리가 무엇이겠는가.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다. 이건 세계 공통의 윤리다. 부부유별은 남편과 아내의 구별이 아니라 배우자와 배우자 아닌 사람의 구별이다. 다시 말해 내 남편과 다른 남자를 구별하고, 내 아내와 다른 여자를 구별하는 것이다.

퇴계 제자 이덕홍은 “남편은 자기 아내가 아니면 어울리지 않고, 아내는 자기 남편이 아니면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했고, 한원진은 “각자 제 남편과 제 아내를 두고 난잡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산 정약용의 해석이 가장 명쾌하다. “부부유별이란 각기 제 짝을 배필로 삼아 난잡하지 않은 것이다.” 다산은 세간의 오해도 지적했다. “요즘 사람들은 안팎의 구분이 엄격한 것을 부부유별이라고 아는데, 잘못이다.” 요컨대 부부유별은 성 역할 구분이 아니라 성 윤리라는 것이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와 같은 의미다.

남녀유별도 마찬가지다. 남녀유별은 목욕탕에 남탕과 여탕이 있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를 구별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소학’에서는 남녀유별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자에게는 아내가 있고 여자에게는 남편이 있으니 구별하여 난잡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 남자 아무 여자하고 무분별한 관계를 맺지 말고 자기 남편 자기 아내하고만 관계를 맺으라는 말이다. 성 역할 구분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없지 않지만 성 윤리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결국 남녀유별도 부부유별과 같은 뜻이다.

부부 아닌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을 불륜(不倫)이라고 한다. 윤리에 어긋난다는 말이다. 그 윤리는 다름 아닌 부부유별이다. 만약 부부유별이 성 역할 구분이라면 여성 직장인이나 남성 전업주부의 존재를 불륜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부부유별의 의미는 불륜의 정의에서 분명해진다. 아무리 간통죄가 폐지되었다지만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 아닌 사람과 무분별하게 관계를 맺는 걸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 관계라도 양다리를 걸치면 지탄을 받는다. 모든 남녀 관계는 수많은 여자 중에 한 여자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수많은 남자 중에 한 남자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겠다는 약속에 바탕하기 때문이다. 그 약속이 바로 부부유별이다.

유교사회가 남녀를 엄격히 구분한 건 사실이다. 성 역할을 구분한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성 역할 구분은 수단에 불과했다. 근본적인 목적은 성 윤리 확립이었다. 남녀를 구분하는 수많은 행동규범은 모두 부부유별의 성 윤리를 실천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 역할 구분은 이제 무의미해졌지만 성 윤리까지 무의미해진 건 아니다. 이 점에서 부부유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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