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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버블보다 무서운 것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최근 주식시장에서 일부 거품(froth)이 있는 것 같다고 발언한 이후 경기 논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파월 발언을 두고 SK증권이 내놓은 거품(froth)과 버블(bubble)에 대한 차이점 분석이 흥미롭다. froth는 맥주나 카푸치노에 있는 거품으로, 한번에 터져버리는 bubble과는 다른 표현이라고 설명한다. froth 수준의 거품은 경기에 활력을 주는 측면으로 해석한 듯하다. 앨런 그린스펀 전 연준 의장도 2007년 주택시장 거품론을 언급하면서 “bubble보다는 froth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froth는 bubble보다 긍정적인 성격이 강한 표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파월 전임자인 재닛 옐런 재무 장관이 4일(현지시간)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발언했다가 나스닥이 1.9%나 하락하자 뒤늦게 번복했다. 지난 2~3월 미 국채 수익률 급등으로 식겁했던 주식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특히 파월이 지난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직후 기자회견에서 서비스 부문의 노동자들이 다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며 언젠가 인근의 노숙인 숙소 방문 계획을 밝힌 점이 눈길을 잡는다. 게다가 당신 또는 당신의 가족도 노숙인이 될 수 있다고 의미심장한 말까지 보탰다. 표면상으론 경기가 완전히 회복되려면 고용이 개선돼야 하므로 당분간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조하는 차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엔 저금리와 양적완화로 양극화 문제가 극심해져 중앙은행 수장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는 중압감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정책 당국의 버블 대처능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올랐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버블 위험도 위험이지만 정부 무능과 계층 간 위화감이 버블 붕괴 불안감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젊은이들이 동학 개미로도 모자라 미국 주식 투자 원정에 나서고, 가상화폐 투자에 몰입하는 등 한탕주의에 매달리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계층 사다리를 오를 수 없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원장은 흙탕물에 옷을 더럽힌 유치원생 취급하듯 젊은이들의 치기를 나무라며 투자자 보호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젊은이들이 이에 분노를 표출하자 이번엔 내년 대통령선거 영향을 우려한 정치권이 거꾸로 가상화폐 제도화 정책을 만지작댄다. 공직자의 투기와 반칙의 상징이 된 LH 사태로 박탈감에 빠진 유권자들이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등을 돌리자 여당은 부동산 거품을 빼겠다며 강화했던 세제를 손바닥 뒤집듯 완화하겠단다. 여기에 재계 단체들은 수십조원대 유산 중 일부를 사회환원한다는 발표 직후 반도체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며 동료 재벌 수장의 사면을 요구하고 나서기까지 한다.

국민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사지가 마비돼도 당국은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말만 반복한다. 한강 실종 대학생 시신을 엿새 만에 경찰이 아닌 민간구조사가 찾아내고, 사인 규명 촉구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인이 30만명을 훌쩍 넘어선 것은 공권력에 대한 믿음이 땅에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밀수, 절도, 위장전입 등의 의혹으로 가득한 신임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이제 식상한 쇼로 전락했다. 드라마 ‘빈센조’와 ‘모범택시’가 범죄자들을 잔인한 마피아식 보복과 사형(私刑)으로 응징해도 시청자 호응이 높은 것은 무얼 의미하는가. 법과 정의가 통하지 않는 현실을 여과 없이 반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버블이라도 터져 계층 이동 사다리마저 붕괴될 경우 어찌할지 아찔하기만 하다.

이동훈 금융전문기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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