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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일·가정 양립에서 본 장관 후보자

이성규 경제부 차장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교수 시절 외국 세미나 참석에 가족을 동반했다가 지난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여자 조국’이라는 말을 들었다. 야당은 임 후보자와 가족이 같은 호텔방을 쓴 것은 연구비 횡령이라고 몰아붙였다. 동반 가족의 다른 비용은 모두 자비로 충당했다는 해명은 먹혀들지 않았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배우자의 마트 상품 절도 전력에 대해 아내의 ‘마음의 병’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배우자의 도자기 밀수 의혹으로 낙마 위기에 처한 박준영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도 집안일 때문에 논란에 휩싸였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해외 근무 시절 들여온 영국산 도자기와 장식품을 관세를 내지 않고 카페에서 판매했다. 박 후보자는 “아내가 판매한 줄 몰랐다”며 관세를 내겠다고 했다. 회의에 불참하고 부인의 도자기 정리를 도운 것 아니냐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박 후보자는 “휴식을 취했을 뿐”이라고 했다.

청문회를 보면서 투기 의혹 등 다른 결격 사유는 논외로 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 측면에서 세 후보자 행태를 평가해봤다. 임 후보자의 경우 휴가와 출장을 겸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는 부실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공적인 일에 소홀했다. 그러다 보니 해명이 변명으로 들렸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훼손한 것 같아 안타깝다. 노 후보자와 박 후보자에 대해선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대수냐고 할지 모르지만 이는 법률로 명문화돼 있는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과중한 일 때문에 육아 등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자는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과 같은 뜻이다. ‘일과 가정의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는 육아휴직, 출산휴가 등 워라밸을 돕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가 명시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매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육아휴직 제도를 모른다는 근로자 비중은 13.5%로 1년 전에 비해 2.5% 포인트 감소하는 등 관련 제도에 대한 인지도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런 정형화된 제도가 아닌 일상생활에서의 일과 가정의 양립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이른바 사회에서 잘나간다는 중장년들이 가장 큰 문제다. 이들은 대부분 워커홀릭이다. 슈퍼맨이 아닌 이상 상대적으로 가정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모 부처 장관은 과거 청문회를 준비하면서 가족의 입출국 기록을 열람한 뒤에야 자신이 육십 다 되도록 가족과 함께 해외를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공(公)과 사(私)를 명확히 구분해야 하고 공이 더 중요하다고 배워왔다. 그 결과 한국은 대표적인 장시간 근로 국가군에 속하게 됐다. 2019년 기준 한국의 평균 근로시간은 연간 1957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1626시간·2019년 기준)보다 20% 가까이 많다.

앞으로 선진국처럼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사회 전반에 일·가정 양립 분위기가 확산될 수 있을까. 지금처럼 사적인 가정사는 나중이라는 우리 사회의 고정화된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다.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다. 가정생활에 문제가 생기면 바깥일의 생산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으면 한다. 정부의 국정과제를 실천할 장관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살아왔는지 알고 싶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장관 후보자들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이성규 경제부 차장 zhibag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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