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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코로나 시대의 육아

조성은 국제부 기자


아이가 태어나기 전 회사 선배로부터 ‘결혼을 하면 인생에서 바뀌는 건 10%뿐이지만 출산을 하면 90%가 바뀐다’는 조언을 들었는데 그 말이 참으로 맞는 것 같다. 아이가 없던 시절, 결혼 생활이란 그저 연애의 연장선에 지나지 않았다. 고된 육아를 일 년 반 가까이 경험해보니 예전과 같은 평온한 일상과 영영 멀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크게 체감하는 차이는 개인 시간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거다. 예전에는 늦게 퇴근 하더라도 자기 전에 책을 몇 페이지라도 더 읽고 잘 만한 정신적 여유가 있었다. 지금은 ‘칼퇴(정시 퇴근)’를 하고 집에 돌아와도 ‘육퇴(육아 퇴근)’라는 더 커다란 목표가 기다리고 있다. 아내를 도와 아이를 씻기고 잠옷을 입히고 잠투정을 어르고 달래 간신히 재우고 나면 두 사람 모두 진이 완전히 빠져 책은커녕 넋 놓고 TV나 볼 뿐이다.

회사 생활도 달라졌다. 모름지기 직장인이라면 주말을 앞둔 저녁에 지인이나 동료와 식사를 함께하며 회포를 푸는 게 상례다. 지금은 휴일 전날에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으려고 한다. 전날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은 몸으로 아이를 돌본다는 건 정말로 끔찍한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회사로 출근해서 업무를 보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싶을 정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재택근무가 시행되면서 육아 부담은 더 커졌다. 미혼이거나 자녀가 없는 처지라면 ‘출근하지 않고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집에서 업무를 보니 좋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사정은 간단치 않다. 이제 16개월째로 접어든 아이는 몸이 커진 만큼이나 호기심도 깊다. 아빠라는 사람이 골방에 틀어박혀 빛이 나는 네모 모양 물체를 바라보며 또각또각 소리를 내는 게 몹시도 궁금한 모양이다. 거실에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서재로 달려 들어와 키보드를 두드리거나 마우스를 잡아당기곤 한다. 업무용 채팅창이 뜬 상태에서 자판을 마구 눌러 황급히 지운 적도 있다.

가장 큰 걱정은 아이가 도통 마스크를 쓰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누구를 닮았는지 고집이 센 아이는 특히 모자와 턱받이처럼 얼굴 쪽에 착용하는 물건을 굉장히 싫어한다. 마스크를 얼굴에 대기만 해도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억지로 줄을 귀에 걸어도 곧바로 벗겨내고는 땅에 내팽개친다. 얘보다 몇 개월 늦게 태어난 아이들이 얌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일단 현행 방역 수칙은 만 24개월 미만 영유아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난 시기는 중국 우한에서 처음 코로나19 존재가 확인되던 2019년 겨울이었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국내에 처음 들어와 대구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던 당시만 해도 2003년 사스(SARS)처럼 여름이 지나면 사그라들 줄로만 알았다. 아이가 만 24개월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상황이 정리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아이가 마스크를 쓰기 싫어해도 굳이 강요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아이가 두 돌을 맞기 전에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것이라고 확신하기 어려워졌다. 부랴부랴 마스크 쓰기 연습을 시작했지만 그 사이 고집과 함께 완력도 더 세진 아이는 마스크를 벗는 것도 모자라 손으로 힘껏 줄을 잡아당겨 뜯어내 못쓰게 만들어 버린다.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누군가가 ‘왜 마스크를 씌우지 않느냐’고 할까봐 움츠러든다.

얼마 전만 해도 코로나19가 사라지면 무슨 특별한 일을 할까 행복한 고민을 종종 했었다. 지금은 그저 하루라도 빨리 사태가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정작 밖에서는 백신 부족이니, 변이 바이러스니 하는 흉흉한 소식만 전해지는 것 같다. 어서 이 어려움이 모두 지나가고 말문이 완전히 트인 아이에게 ‘네가 태어나자마자 코로나19라는 무서운 병이 돌았단다’고 옛날 얘기처럼 들려줄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조성은 국제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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