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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 코로나를 기억하고 치유하는 길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탁상용 캘린더를 뒤적이다 보니 5월에 유독 ‘○○○의 날’이 눈에 자주 띈다. 자그마치 16개로 거의 반이 기념일로 차 있다. 10월의 14개를 제치고 가장 많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이유와 무관치 않다. 3월의 바람과 4월의 비가 5월의 꽃을 피게 한다는 이맘때쯤 예년 같으면 야외로 향하는 물결이 주말마다 이어졌겠지만 2년째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지긋한 ‘집콕’이 일상화되는 양상이다. 코로나19가 낳은 서글프고 답답한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바이러스가 우리 생활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도 하나둘씩 쌓여만 간다.

그중 관심을 끄는 건 한 유통업체가 내놓은 16억개의 택배 상자로 살펴본 코로나19 사태의 일상이다. CJ대한통운이 지난해 배송된 택배 상품 16억개의 운송장 데이터를 분석해 펴낸 ‘일상생활 리포트 2020~2021’이 그것이다. 경제활동인구 기준으로 보면 1인당 연평균 36건의 택배를 받아본 셈이다. 일반 택배상자(35㎝)를 기준으로는 지구 둘레를 약 14바퀴 돌 수 있는 거리다. 리포트에 따르면 식품군 물량은 2019년보다 50% 증가했다. 식품 배송은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한 지난해 3월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3월 식품 배송 물량은 전년 대비 88%나 뛰어올랐다. 재택 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홈오피스 가구 수요도 많아졌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반려동물과 관련된 간식사료, 영양제, 장난감 등의 택배 물량도 상승세를 보였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고서도 눈에 띈다. KISDI는 ‘코로나, 미디어 지형을 바꾸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스마트폰 이용 시간이 전년보다 약 6분 증가해 하루 평균 1시간55분을, TV 평균 시청 시간은 전년 대비 14분 늘어난 3시간9분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줄어들던 TV 시청 시간은 최근 5년 중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 코로나19 이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등 동영상을 재생한 비율도 전년(33%)보다 상승한 47.9%를 기록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이용률도 전년(52%)보다 14.3% 포인트 증가한 66.3%로 나타났다. TV 시청 시간과 유튜브, OTT 이용이 크게 늘어난 것은 코로나의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민정신건강에 코로나19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통계에서 나타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20년 우울증 등 기분장애로 진료를 받은 환자는 101만6727명을 기록해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9년(96만3239명)보다 5.55% 증가한 수치다.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우울 위험군은 2018년 3.8%에서 2020년 22.1%까지 늘어났다.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생각했다는 응답 비율은 2018년 4.7%에서 2020년 13.8%로 높아졌다. 코로나 블루를 실감하게 한다.

전문가들은 확진자가 대폭 감소하거나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바로 정신건강 호전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감염병의 대규모 유행 사태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의 정신건강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1918~1919년 스페인 독감 팬데믹과 1960~1980년 독감 대유행기에 태어난 아이들이 학력 저하, 신체 장애 등의 비율이 높고 소득이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스페인 독감이 그러했듯 코로나19도 언젠가 종식될 터다. 이 과정을 통해 우리 인류는 한 발 더 나아갈 것이 분명하다. 잊히고 외면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면서 말이다.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갇혔던 이들을 기억하고 치유하는 길. 이게 진정한 코로나19의 끝이다.

김준동 공공정책국장 겸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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