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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오페라의 유령’이 돌아오지만…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런던 웨스트엔드는 뉴욕 브로드웨이와 함께 전 세계 공연계의 양대 중심지다. 지난해 3월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던 웨스트엔드가 영국의 빠른 백신 접종을 앞세워 다시 공연을 올릴 채비를 하고 있다. 연극 ‘쥐덫’과 뮤지컬 ‘제이미’가 오는 17일과 20일 각각 다시 시작되는 등 여러 작품의 재개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다만 당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해 객석의 50%만 채우고, 코로나 상황을 봐 가며 판매 좌석을 늘려간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웨스트엔드를 상징하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제작사가 7월 27일 공연을 재개한다고 발표하면서 오케스트라 연주자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밝혀 파문을 일으켰다. 프로듀서 카메론 매킨토시와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웨버가 각각 이끄는 카메론 매킨토시 그룹과 더 리얼리 유스풀 그룹(RUG)은 지난달 공식 성명을 통해 27명이던 오케스트라 단원을 14명으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오보에 하프 트럼펫 퍼커션이 없어지고 바이올린 수가 줄게 된다. 이들 제작사는 코로나가 초래한 공연계 위기에 제작비 축소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사람들의 수입이 줄고 관광객이 못 오는 상황에서 티켓 판매가 예전 수준으로 회복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가수 크리스틴과 그녀를 사랑하는 유령의 이야기를 그린 ‘오페라의 유령’은 화려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이 때문에 1986년 초연 이후 다른 뮤지컬보다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전자 키보드가 다양한 악기 소리와 각종 효과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게 되자 상황이 바뀌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2012년부터 투어 프로덕션에선 연주자를 대신하는 전자 키보드를 활용해 오케스트라 규모를 14명으로 줄였다. 코로나로 이제 런던 상설 공연에서도 작은 오케스트라가 도입되기에 이른 것이다.

매킨토시는 오케스트라 규모가 줄었다고 해서 음악적 스펙터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초연 당시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지만, 이제는 현대적인 오케스트라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주자들은 지난해 매킨토시 그룹과 RUG가 극장을 폐쇄하며 ‘원래의 팬텀’으로 돌아오겠다고 했던 약속과 다르다며 반발하고 있다. 나아가 매킨토시 그룹과 RUG가 자신들의 노동력을 부양해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매킨토시는 “나는 공연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의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고된 연주자들이 화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연주자들이 왜 매번 똑같은 연주를 반복하길 원하는지 이상하게 생각된다”면서 “배우나 연주자의 반복되는 일에 고용을 유지해선 안 된다고 본다. 공무원도 아니고 우리는 예술을 창작하기 때문이다”고 반박했다.

코로나 이후 웨스트엔드는 지금까지 약 10억 파운드(1조6000억원)의 티켓 매출이 없어지며 궤멸 위기에 놓였다. 영국의 백신 접종이 빠르다곤 해도 여전히 코로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공연을 재개하는 것은 극장 폐쇄가 더 길어지면 공연산업 자체가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붕괴할 위험이 있어서다. 그래서 현지 여론 역시 연주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매킨토시 그룹과 RUG의 결정을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웨스트엔드에서 ‘오페라의 유령’ 외에 아직 오케스트라 규모 축소를 언급한 프로덕션은 없지만, 방향성 면에서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경우 공공 의존도가 워낙 높으므로 영국과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한 제작 환경의 변화가 한국 공연계에도 영향을 끼쳤으며 그 결과가 머지않은 시기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장지영 문화스포츠레저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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