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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의 밥상+머리] 전형적인 거 말고 조금 다르게


퉁명스럽다. 종종 짜증을 내고, 혼란스러우며, 아물지 않은 상대방의 상처를 건드리기도 한다.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임한 교사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서, 나이든 여자들이 으레 보여주는 상냥함이나 너그러움은, 없다. 하나뿐인 아들은 결혼과 함께 먼 곳으로 이사를 가버렸고, 동네에서 사람 좋기로 소문났던 남편은 먼저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럭저럭 살아낸다는 그 말, 거기에도 여전히 파도는 있지.” 혼자 남은 그는 생각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 이야기다. 상실과 인생에 대해 깨달음을 주는 독창적 인물이라는 찬사를 보고 처음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땐 주인공이 이런 할머니인 줄 몰랐다. 어릴 때 봤던 미드 ‘초원의 집’에 나오는 어머니 캐럴라인 잉걸스처럼 온화한 성품은 아니어도, 그러니까 설령 좀 엉뚱하더라도 사랑과 지혜와 영감으로 가득 찬 그런 여성이리라 기대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웬걸. 올리브 키터리지가 조연처럼 등장하는 13편의 연작 중 네 번째 에피소드를 읽으면서야 서서히 이 이상한 할머니에게 빠져들었다. 이런 비전형적인 인물로 전형적인 대중시장을 사로잡은 소설가에게 감탄하면서. 2014년 미국 HBO에서 방영한 4부작 드라마에서는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올리브 키터리지 역을 맡았다.

“전형적인 엄마, 나 그런 거 하기 싫어요. 조금 다르게 하고 싶어요. 그건 내 필생의 목적이에요.”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자 윤여정 배우의 수상 소감과 인터뷰 내용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오스카가 70대 중반의 한국 여배우를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낙점한 이유를 딱 한 문장으로 말하라고 한다면, 배우 자신이 갖고 있는 이 필생의 목적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할머니는 진짜 할머니 같지 않아요”라고 영화 속 어린 손자가 투덜거릴 때, 그는 묻는다. “할머니 같은 게 뭔데?” 진짜 할머니같이 연기하는 대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윤여정 그 자신을 보여줌으로써 그는 세계인의 공감을 얻고 21세기 젊은이들의 환호를 받았다.

유튜브에서 그의 인터뷰를 찾아 들으며, 나는 대파를 썬다. 미나리가 아니라. 영화도 영화지만 기대 이상의 어록으로 인생의 매운맛과 단맛을 알려주는 이런 어른의 말은 마음에 새겨두고 싶다. 전형적인 엄마, 전형적인 할머니, 전형적인 여자 같은 건 거부해버린 배우. ‘어떤 부류’에 속하는 대신 온 힘을 다해 그저 자기 자신을 살아온 사람. 연기도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가 좋고, 사람도 전형적이지 않은 사람이 좋다. 종종 요리도 그렇다. 대개 조연의 향신채로 쓰이는 대파를 주연으로 만드는 요리. 기름을 살짝 두르고 적당한 길이로 자른 대파를 구운 뒤 간장과 들기름, 매실청, 식초를 넣은 소스를 자박하게 얹고, 홍고추와 생강을 다져 대파 위에 장식한다. 이른바 대파 마리네이드. 색도 맛도 충분하다. 그러고 보니 이번 오스카에서는 대파 같은 배우들이 나란히 여우조연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어찌 이들의 영화를 놓칠 수 있으랴.

카피라이터·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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