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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준 칼럼] 갑작스러운 이별, 남겨지는 기억


황망함 속에 내려지기 마련인
장기기증 결정의 고통과 무게
결코 퇴색하게 놔둘 수 없는
숭고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아들이 기억되게 하고 싶어”
장기기증 전도사가 된 아버지
우리가 해야 할 작은 보답은
그 헌신을 기억하는 일이다

2018년 경찰이 공개한 CCTV 영상을 기억하고 있다. 10월 3일 새벽 3시에 제주시 어두운 거리에서 심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귀가하던 열아홉 살 김선웅군이 찍혀 있었다. 청년은 그 시간에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가던 할머니와 마주쳤다. 수레바퀴가 길바닥 틈에 빠져 잘 움직이지 않았고, 선웅군은 그 곁을 지나치지 못했다. 할머니 수레를 대신 끌고 걸어가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과속 차량이 그를 덮쳤다. 뒤에서 밀며 따라가던 할머니는 무사했지만, 병원에 옮겨진 선웅군은 뇌사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오직 CCTV만이 바라보던 시간에 낯선 이를 위해 선뜻 손을 내밀었던 청년은 흐릿한 영상 한 토막을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가족에게는 이미 아픔이 있었다. 선웅군 어머니는 3년간 식물인간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보면서 아버지와 누나는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만약 그런 상황이 또 생기면 그때는 꼭 살리자, 내 생명을 살리기 어렵다면 다른 생명이라도 살리자는 뜻에서 서약서를 썼는데, 그런 상황이 선웅군에게 벌어졌다. 나흘 만에 결정을 내렸다. 선웅군은 심장 각막 폐 등을 일곱 명에게 나눠주고 떠났다. 청년은 눈을 감았지만, 그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그렇게 시작됐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주며 살았던 정진석 추기경은 몸에 이상이 오자 준비를 시작했다. 입원한 지 사흘 만에 꽃동네 2000만원, 명동밥집 1000만원 하는 식으로 통장 잔고를 모두 기부했다. 입원 중 통장에 들어온 마지막 800만원까지 의료진과 봉사자에게 나눠주고 떠났다. 김수환 추기경이 그랬듯이 몇 해 전 각막 기증도 서약한 상태였다. 아름다운 이별의 기억은 더 많은 이별을 아름답게 만든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 해에 장기기증 서약자는 20만명을 넘어 예년의 두 배를 기록했고, 정 추기경의 선종을 보면서 또 많은 이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세상에 남겨지는 기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힘을 가졌다.

홍우기씨는 네이버에서 ‘지식인’으로 활동한 지 6년이 됐다. 2015년 서른세 살 아들 윤길씨가 저녁을 먹고 방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다 갑자기 뇌출혈을 일으켰다. 병원에 실려 갔지만 손 쓸 틈도 없이 뇌사 판정이 나왔고, 중환자실에 누운 지 사흘 만에 아버지는 장기기증을 결심했다. 아들의 결혼을 위한 양가 상견례를 1주일 남겨둔 때였다.

아들을 그렇게 보낸 뒤 일흔을 바라보던 아버지는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네이버 지식인 코너에 장기기증에 관한 질문이 올라오면 ‘윤길 아빠’라는 아이디로 답변을 달았다. 독수리 타법으로 한 자 한 자 적어나갔고, 아들의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고, 관련 기관에 수시로 전화해가며 정보를 파악해서 알려줬다. 그렇게 올린 답변은 어느새 3000건이 넘었다. 좋은 답변으로 채택된 비율도 80%를 웃돈다. 그는 “아들의 이름이 기억되게 하고 싶어서”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은 이들에게 누군가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소중하다.

스물아홉 살 정다솜씨는 지난 4일 인하대병원에서 폐와 간, 신장을 말기환자 네 명에게 주고 떠났다. 유학하고 돌아와서 꿈꾸던 일을 막 시작한 외동딸은 엄마와 다정하게 외출한 길에서 승용차에 오르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몇 해 전 장기기증을 서약했던 부모는 뇌사에 빠진 딸을 그 길로 안내했다. 예순 살 정연순씨는 지난 2월 간과 신장을 기증하고 눈을 감았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을 돕다가 넘어져 뇌사 판정을 받은 그는 10년 넘게 요양보호사로 노인들의 손발이 돼주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가족과 주말 나들이를 하고 귀가하다 엘리베이터에서 쓰러진 예순 살 김시균씨는 의사였다. 평생 사람 살리는 일을 하다가 마지막까지 여섯 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갔다.

이들에게 닥친 일은 모두 갑작스럽게 벌어졌다. 장기기증 결정은 대부분 이렇게 황망한 상황에서 내려지게 된다. 가족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감히 짐작할 수 없고, 그 결정에 담긴 의미는 결코 퇴색하게 놔둘 수 없다. 나는 이들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기억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서른세 살 후배 기자가 이들과 같은 길에 들어섰다. 무척 건강했는데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건강했던 만큼 여러 장기를 나눴다. 오래 기억하려 한다.

편집국 부국장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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