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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의 지금 미국은] 한인 위안부 운동, 바이든 움직인 아르메니아계에게 배워라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추모일이었던 지난 4월 2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터키대사관 앞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한 여성과 어린이가 ‘고마워요 바이든 대통령’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로 인정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추모일인 지난달 24일 성명에서 “우리는 오스만제국(지금의 터키) 시대에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숨진 모든 이의 삶을 기억한다”며 “미국 국민은 106년 전 오늘 시작된 집단학살로 목숨을 잃은 150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기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이 수십년 동안 추구해 온 일이다. 이 선언은 지금까지 어떤 미국 대통령도 하지 못했던 일인데 바이든 대통령은 과감하게 시행했다.

그동안 터키 정부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무슬림인 오스만 터키인과 기독교도인 아르메니아인 사이의 폭력적 충돌로 인해 양측에서 대규모 사상자를 냈다고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가들에 의해 아르메니아인들을 무슬림 터키인들이 강제적인 살육과 살상으로 수년간 인종 청소를 벌였음이 드러났다. 그간 미국의 대통령들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터키의 반발을 우려해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란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의 국익(미국의 군사기지 보호)을 위한 중동과 유럽 지역에서 터키의 중요성 때문에 이런 표현을 꺼려했던 탓이다.

이 문제는 그동안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과 역사 진실의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가장 부끄러운 입장이 돼왔다. 따라서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제노사이드 선언은 전 세계 인권에 대한 미국의 약속을 이행하는 중요한 단계를 의미한다.

미국 대통령이 제노사이드라고 말하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길고 긴 터널에서 집단학살의 유령들과 싸우는 아르메니아인들의 눈물겨운 인내로 점철됐다. 캘리포니아, 시카고, 보스턴, 디트로이트, 필라델피아 등지의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공동체는 그들의 지울 수 없는 잔혹한 역사에 대한 슬픔의 공유감으로 정치적 결집을 이뤘다. 그들의 성취는 빠르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정치적인 힘은 강력했다.

2007년 일본의 강력한 반대 로비에도 불구하고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 낸 한국계 미국인들의 풀뿌리 정치운동을 보고 이들도 워싱턴에 집중했던 시민 로비를 지역으로 분산했다. 미국 내 아르메니아계의 절반 이상 인구가 밀집된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일본군 강제위안부의 소녀상이 세워진 이유다. 같은 시기 아시아에서는 일본군 강제위안부, 유럽에서는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와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 사건이 일어났음을 미국의 시민사회에 일깨우는 전략이다. 글렌데일시의 아르메니아인들이 일본의 방해를 적극 막아내 주고, 한국계의 풀뿌리운동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연방의회 결의안 통과에 힘을 합하는 연대운동이다. 결국에 아르메니아인들은 한국계가 촉구한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보다 13년이 늦었지만 대학살 결의안을 2019년 하원과 상원에서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이 여세를 몰아 바이든 선거캠프에 매달렸다. 2008년 버락 오바마 선거운동에도 개입해 당시 바이든 부통령 후보로부터 ‘대통령의 제노사이드 선언’을 약속받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로 쓴잔의 맛을 보았다. 이들에게 2020년 대선의 바이든 후보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지난해 바이든 선거에 전력을 집중한 아르메니아인들의 극성스러움은 그래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드디어 해냈다. 상원과 하원 그리고 대통령까지 총동원해 그들의 역사를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했다.

2007년 연방 하원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을 이끌어 낸 한국계들은 지금 아르메니아인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결의안이 하원에서 채택되도록 한 한인들은 그것이 시작임을 모르고 시작점에서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 운동을 미국에서 확대 발전시킬 궁리를 하지 않고 한국으로 가져가 반일운동의 도구로 활용하기에 바빴다. 한국의 강제위안부운동을 미국으로 끌어들여 미국에서 일본과 다투는 운동으로 축소시키고 말았다. 일본의 간교한 의도대로 여성의 인권문제를 한·일 간 분쟁 이슈라는 함정에 빠뜨렸다.

1915년 터키의 집단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집단이주한 아르메니아인들은 미국으로부터 부여받은 회복·재건의 기회를 전 세계 아르메니아인 공동체의 목표를 이루는 데 쏟아부었다.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 인구는 50만명이다. 한국계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그 목표를 달성했다. 2020년 선거에서 한국계는 연방 하원에 4명이 진출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한국계도 일본군 강제위안부의 역사 진실 문제를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도록 미국 대통령의 선언으로 못 박도록 해야 한다. 미국 내 한인들의 정치적인 역량으로 절대 무리한 일이 아니다. 바이든 리더십에선 그것을 충분히 기대해도 될 일이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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