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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집단적 트라우마가 설명하는 것

전웅빈 국제부 차장


‘배심원 96’ 백인 여성 리사 크리스텐슨(56)은 세계가 주목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 재판에 참여했었다. 플로이드는 지난해 체포 과정에서 전 경찰관 데릭 쇼빈에게 9분29초 동안 목이 짓눌려 사망했다.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쇼빈에 2급, 3급 살인 혐의 등에 유죄 평결을 내렸다. 그녀는 재판 과정을 지켜봤지만 심의엔 참여하지 않은 대체 배심원이어서 소회를 언론에 밝힐 수 있었다.

그녀는 이런 고백을 한다. “쇼빈 행동은 잘못됐지만, 저는 이 사건을 인종적 정의라는 프리즘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인종차별이 아닌 경찰권 남용 문제로 사건을 바라봤다는 의미다. 이 사건에서 색을 걷어내면 20달러 위조지폐를 사용한 혐의를 받는 남성이 경찰 제압에 저항했고, 강압적 체포 과정에서 숨진 것이 된다. 그녀는 “플로이드가 ‘핸들에 손을 올려라’ ‘차에서 내리라’는 경찰의 반복된 지시를 왜 따르지 않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흑인 룸메이트와 언쟁했던 일도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그녀의 인식을 뒤바꾼 순간이 있었다. 목격자들 증언이다. 플로이드 사망 영상을 SNS에 올려 사건 본질을 알린 다넬라 프레이저(18)는 “경찰들이 곤봉으로 행인들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겁이 났다. 제가 뭔가 더 하지 않아서 그의 목숨을 구하지 않았던 것을 사과하고 미안해하면서 여러 밤을 지새웠다”고 증언했다. 또 “플로이드 모습에서 아빠와 오빠, 사촌, 친구들을 봤다. 그들도 모두 흑인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사촌인 9살 소녀와 또 다른 10대 목격자들도 재판정에서 무력감과 죄책감을 호소했다.

미 언론은 이를 ‘방관자들의 트라우마’라 부른다. 한 소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버티며 증언을 이어 갔는데, 크리스텐슨은 그의 턱이 떨리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고 했다. “플로이드의 생명이 서서히 밀려 나가는 장면을 다시 떠올리며 증인들이 울었을 때 나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 증언으로 나는 플로이드가 당시 어떤 자리에 서 있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고, 그들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됐어요.”

‘목격자들의 트라우마 증언’은 플로이드 재판의 결정적 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플로이드의 죽음은 경찰권 남용보다 인종차별 문제가 더 근원적 문제라는 공감대 형성에 이들 증언이 힘이 됐다. 집단이 공유한 트라우마는 현상 밑바닥에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로 사용됐다.

한국에서는 스물셋 대학생 이선호씨 사망이 집단 트라우마를 일으키고 있다. 그는 전역 후 학비를 벌려고 아빠가 일하는 일터에 나왔다가 300㎏ 철판에 깔려 죽었다. 위험한 비정규직 일터에 죽음이 철커덕 내려앉는 공식이 그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발전 김용균씨, 청년 장애인 김재순씨,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건설 노동자 김태규씨처럼 약자가 떠안은 저렴한 위험 노동의 비극적 결말이다.

이 문제는 현장의 안전 불감증이 아니다. 비극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은 수없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호소해 왔다. 대개 돈이 절실한 궁핍한 사람들이 위험을 떠안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이를 전가하는 방식마저 저렴하다. 비용을 아끼기 위한 하청과 재하청 구조가 밑바닥 노동을 더 저렴하고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약자들은 이 트라우마를 공감한다.

선호씨 죽음 앞에서 아버지가 죄책감을 호소하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이사장이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선호씨 친구는 ‘그처럼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고 있을 청년과 모든 노동자를 위해’ 제발 마지막이길 호소하는 청원문을 썼다.

전웅빈 국제부 차장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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