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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논단] ‘꼰대’라는 프레임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들소, 사슴, 멧돼지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기원전 1만5000년경 구석기 시대 사람들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그 형태가 분명하고 섬세하다. 알타미라 동굴이 유명세를 타게 된 또 다른 이유는 그 그림들에 “요새 젊은것들은 버릇이 없어 걱정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걱정과 불만은 인류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얼마 전 ‘직장 내 세대 갈등’을 조사했는데 5060세대는 ‘조직 몰입도’ ‘일에 대한 열정’ ‘연대감’의 측면에서 청년 세대에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는 주도권이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기성세대가 ‘요새 애들’을 못마땅해하는 것이 세대 갈등의 진앙이었다면 요즘은 주로 아래에서 불만이 터져 나온다. 일종의 세대 반역인 셈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꼰대 현상’이다. 꼰대는 나이나 지위 등에 기대어 자신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린 사람에게 무턱대고 반말을 하거나 자신의 과거를 들먹이며 요즘 세대를 비하하는 행위 등이 대표적인 ‘꼰대질’로 꼽힌다. ‘나는 꼰대가 아니야’라고 착각하는 진짜 꼰대들을 위해 이런저런 ‘꼰대 예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그 핵심은 젊은 사람에게 ‘함부로 충고하지 않는 것’이다.

기성세대에 대한 젊은이들의 불만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미국에선 베이비붐 세대의 꼰대질을 비꼬는 ‘됐어요, 그만하세요(OK boomer)’가 유행어가 됐다. ‘나만 옳고 남은 틀렸다고 믿는 나이 든 사람’은 만인의 공적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꼰대 현상의 확산은 시대를 반영한다. 젊은 사람들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젊은 세대가 윗세대의 부당한 간섭을 인내하고 수용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젊은 세대의 위기감이 기성세대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이어지는 측면도 주목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의 희생을 담보로 무책임한 경제 정책을 고집하면서 세대 간 양극화가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세대의 꼰대 갑질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디지털 디바이드’라는 말이 있듯이, 젊은 세대는 새로운 기술 문명을 다루는 실력에서 기성세대를 압도한다. ‘문명적 간극’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그 격차가 크다. 세대 간 갈등 이면에는 이런 냉정한 힘의 논리도 작동하고 있다.

역사 이래 세대 간 의견 충돌과 갈등은 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 골이 너무 깊어졌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갈등은 이미 지역 갈등 수준을 넘었다. 세대 단절을 염려해야 할 정도이다. 무엇보다 기성세대가 아집과 독선의 벽을 허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뜻에서 한 칼럼니스트는 “언제나 젊은이들이 옳다”고 주장했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의 문제에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말 것을 역설했다.

맞는 말이지만 미진한 구석도 있다. 플라톤은 젊은 세대의 버릇 없음보다 나이 든 사람이 주책스럽게 청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달하는 것을 더 염려했다. ‘아이들이 권위적으로 행동한다고 불쾌하게 생각할까 두려워 어른이 그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하고 흉내 내는 한심한 짓’을 질타했다. 마치 오늘날 우리 세태를 보는 듯하다. 플라톤은 어른이 어른답게 행동할 것을 촉구했다.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의 병풍 역할을 해야 한다. 세상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 첫째 조건이다. 기득권이나 알량한 자존심에 연연하면 어른 노릇을 할 수 없다. 젊은 세대에 아부한다는 것은 더구나 말이 안 된다.

더 큰 문제는 꼰대라는 손가락질 때문에 기성세대가 필요 이상으로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도한 자기검열은 누구에게도 득이 안 된다. 젊은 세대가 고슴도치처럼 너무 웅크리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때로 충고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 이종형 시인은 ‘남아 있는 생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면서 ‘뱉어내는 말보다 주워 삼키는 말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는 것이 좋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도 젊은 사람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고민하는지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들의 글을 읽는 것이 특히 유익할 것이다. 꼰대가 돼서는 안 되겠지만 그 꼰대 프레임에 너무 ‘쫄’ 필요는 없다.

서병훈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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