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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유토피아의 길, 디스토피아의 길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학생모심위원회. ‘모심’은 ‘모집’의 오기(誤記)가 아니다. ‘학생들을 모신다’는 뜻의 주민 자발적 조직이다. 폐교 위기의 시골학교를 되살려 매년 전국에서 100여명의 학생이 줄을 서는 학교로 거듭난 경남 함양의 서하초등학교 얘기다. 전교생 어학연수 및 장학금 지급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마련한 서하초교 학생모심위원회의 의지와 노력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농촌경제연구원의 아이디어가 더해져 교육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유토피아(utopia) 만들기가 시작됐다. 월세 8만5000원에 20년간 쾌적한 타운하우스가 임대되고, 학부모의 지역 기업 취업 알선까지 지원되는 서하초 유토피아의 기적은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1516년 토머스 모어의 착안 이후 인류는 이상향(유토피아)에 대한 그림을 부단히 그려왔다. 현실 사회의 고통과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실현가능한 이상사회에 대한 고민은 합리적 비판을 통한 공존과 대안을 거치면서 전에 없던 풍요와 자유를 인류에게 선사했다. 스웨덴 보건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이 밝힌 것처럼, 전 세계 극빈층은 지난 20년간 절반으로 감소했다. 그럼에도 현대인들은 이를 잘 체감하지 못한다. 가장 우려스러운 사실은 환한 미래를 열어젖혀야 할 젊은이들이 내일의 대한민국 그리고 지역공동체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성장의 늪과 기회의 박탈을 호소하는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21세기 대한민국은 과연 유토피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존 스튜어트 밀이 우려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길로 변침하고 있는 건 아닌지 복잡한 심경이다.

이런 맥락에서 인구의 절반 이상, 부의 7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된 불균형을 외면할 수 없다. 이는 저출산·고령화 사회의 도래,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려 심각한 집적의 불경제를 앞당기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 광역교통망 부족, 감염병 확산, 환경오염 등 과도한 집중으로 인한 수도권 난제들은 지역 기업의 엑소더스, 전통산업 기반의 붕괴, 지역대학의 위기, 심지어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절규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고 ‘분산(scatter)’의 욕구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2019년 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도시민의 귀농·귀촌 의향이 전보다 늘었다는 의견이 20%, 전보다 감소했다는 의견이 8%로 나타났다. 베이비붐세대 은퇴와 함께 5년 이내에 귀농·귀촌을 원하는 인구는 총 945만명, 실제 준비에 돌입한 도시민은 113만명으로 추산된다. 팬데믹이 분산에 대한 인간의 생존 본능을 일깨웠지만, 과연 우리 정책은 이를 반영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수밖에 없었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이런 국민적 여망과 정책 수요에 대비해 지난달 6일 ‘농산어촌유토피아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특위는 향후 정책적으로 관계 부처 협력을 통한 성공 사례들을 다수 창출해내고 확산시킬 각오다. 특히 시범사업 종합 추진 계획을 이른 시일 내 마련하고 농산어촌 주거플랫폼모델을 각 부처 사업에 적용시킬 계획이다.

오는 7월 국민일보 주최로 ‘영남미래포럼’이 개최된다. 연대와 협력을 기반으로 5개 광역자치단체장이 경제권·생활권 등의 초광역적 대안을 모색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다만 너무 광역적 논의로만 경도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농산어촌 문제 역시 행정의 경계를 넘어 지역의 기업, 대학, 공공이 협업한다면 또 다른 유토피아 모델을 만들고 확산시킬 수 있다. 모처럼 마련된 화합과 상생의 장에서 다층적·다차원적 유토피아 모델들이 논의됐으면 한다. 꿈을 꾸는 자가 결국 그 꿈을 실현하게 마련이다. 21세기 농산어촌유토피아의 꿈을 우리 모두 공유하고 그 길로 함께 가자!

김사열 국가균형발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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