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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태 칼럼] 공수처, 청와대 향해 칼 겨눌 수 있나


권력형 비리 아닌 교육감 의혹 상징적 1호 수사 후폭풍 거세
여력 없어 편한 사건 택했나
현실과 드라마는 다르다지만 기대 못 미치는 공수처에 실망
여권, 비판보다 반성부터 해야
수사 무마 의혹 이첩도 딜레마… 직접 처리시 윗선 수사 불가피
아직 권력에 맞설 결기 없다면 차분히 내공 쌓는 게 현명할듯

“진짜 청와대까지 수사하실 겁니까?” “혐의가 있다면요. 그래서 제가 공수처에 온 거니까요.”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초대 처장에 오른 최연수는 자신의 비서실장이 청와대 수사 여부를 묻자 단호한 의지를 드러낸다. 사건은 처장 취임식 첫날 접수된 익명의 제보에서 비롯된다. 바로 자신을 처장으로 만들어준 대통령 비서실장의 뇌물수수. 대선 직전 50억원이 넘는 돈가방을 받는 동영상까지 공개된다. 청와대와 공수처를 겨냥한 거대한 음모가 있음을 직감하지만 배후 추적엔 실패한다. 우여곡절 끝에 1호 수사가 진행돼 청와대 압수수색, 대통령 비서실장 소환 조사, 구속영장 발부가 일사천리로 이뤄졌으나 수감된 비서실장의 극단적 선택이란 뜻밖의 상황을 맞는다. 그럼에도 진실을 찾기 위해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현실의 공수처가 이랬다면 분명 박수를 받았을 터다. 하지만 이 스토리는 JTBC 드라마 ‘언더커버’의 지난 15일 8회분 내용이다. 지금 우리 공수처는 꿈도 못 꿀 얘기다. 성역 없는 수사에 나서길 원하는 국민의 기대에 못 미쳐도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로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으면 상징적인 1호 수사는 그 의구심을 불식시킬 사건을 택했어야 했다. 검찰이 손대지 못하는 권력형 비리 수사와 무소불위 검찰 견제라는 공수처 설립 취지에 맞도록 말이다. 그런데 1호가 하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해직 교사 특별채용 의혹 사건이다. 감사원이 고발해 경찰 조사로도 충분한 것을 굳이 이첩받은 이유를 모르겠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편한 수사를 택한 거라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게다. 공수처에 접수된 사건이 1000건을 넘는다. 3분의 2가 판검사 사건이라고 한다. 그 수많은 사건 중에 직접 수사에 나설 게 한 건도 없다는 말인가.

1호 수사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공수처 출범을 주도했던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마저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러려고 공수처 만들었나 자괴감이 든다”(안민석 의원) “눈과 귀를 의심”(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이수진 의원)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이재명 경기지사) “국민이 의아해하는 것은 당연하다”(이낙연 전 대표) 등등. 하지만 여권이 황제 조사 때는 침묵하다가 1호 수사에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공수처를 공격하는 건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이면에는 자기 편을 수사하는 데 대한 반감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론적으로 거악을 척결하도록 하려면 여권이 공수처 도입 당시 설계와 구성부터 제대로 했어야 했다. 검사 정원을 일개 지청 수준보다 적은 25명으로 제한하고, 수장인 처장에 검사 출신을 아예 배제하고 판사 출신을 골랐을 때부터 한계를 노정했다고 봐야 한다. 여권은 공수처 탓이 아니라 내 탓이라고 반성부터 해야 할 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수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연루된 현직 검사 3명 사건도 검찰로부터 이첩받았다. 안양지청 수사팀의 수사를 무마한 혐의로 이성윤 공소장에 적시된 검사들이다. 공소장엔 당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광철 선임행정관,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개입한 정황도 있다. 공수처는 기록 검토 후 처리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선택지는 직접 수사 또는 검찰 재이첩이다. 공수처 설립 취지에 비춰 직접 수사가 이상적이지만 현재 수사 인력으로는 쉽지 않겠다. 소속 검사 13명 중 5명은 1호 사건에 투입됐고, 6명은 31일부터 4주간 진행되는 법무연수원 위탁 교육을 받을 예정이라 여력이 없다. 검찰 출신 검사 2명은 비수사부서에 배치돼 있다.

공수처로선 딜레마다. 검찰이 마무리하도록 돌려보내는 게 합당한 측면이 있지만 자칫 존재의 당위성마저 부정당할 수 있다. 직접 수사에 나선다면 검사 3명 외에 조국 박상기 등 당시 윗선으로의 수사 확대는 불가피하다. 그만큼 부담이 크고 버거울 수밖에 없다. 청와대와 법무부를 향해 수사의 칼날을 겨눠야 하기 때문이다. ‘언더커버’에서 사건 전모를 밝히려는 최연수는 “그 자리에 앉히고 믿어준 우리 등에 꼭 칼을 꽂아야 직성이 풀리겠냐”는 민정수석의 원망을 듣는다. 공수처가 직접 수사를 결정하려면 이런 원망을 권부로부터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럴 만한 결기가 아직 없다면 사건을 뭉개지 말고 오히려 은인자중하면서 내공을 쌓는 게 현명할 수 있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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