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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 제3의 기적을 준비하자

성경륭 (농산어촌유토피아특위 위원장·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2020년은 한국에 분수령과 같은 해가 됐다. 우선 지난해 한국은 1년 내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사태를 잘 이겨내고 방역과 경제 회복에 성공해 국내총생산(GDP) 세계 10위, 1인당 국민총소득(GNI) 세계 7위를 달성하는 큰 위업을 이뤘다. 그 반면 2020년에는 사망인구가 출생인구를 3만3000명이나 앞지르며 역사상 최초로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됐고, 장기간 누적된 저출산으로 인해 지역대학 175곳이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돼 이런 ‘피크 코리아’ 현상이 발생하게 됐는가. 최근까지만 해도 한국은 선진국들이 두 세기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불과 반세기 만에 성취했다고 극찬을 받던 나라가 아니던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룬 기적의 내용과 두 가지 기적이 특정한 방식으로 결합돼 한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태롭게 만드는 기제를 밝혀내야 한다.

먼저 한국의 산업화 기적이 만들어낸 시장경제의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는 크게 자유시장경제와 조정시장경제의 두 가지 모델을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유형 중 한국은 국가와 은행이 적극적 조정 역할을 담당하는 조정시장경제 시스템에 의해 시장 형성, 대규모 장기 투자, 노사 간·기업 간 협력적 관계 구축과 같은 산업화의 기적을 이룬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조정시장경제를 발전시킨 유럽과 우리의 경험이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유럽의 경우 조정시장경제의 발전은 사민당이나 통합지향적 보수 정당에 의해 추진됨으로써 성장과 분배의 균형, 협력적 노사관계 형성, 자유시장과 사회보장의 병행 발전과 같이 지속적 공동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초고속 성장이라는 단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강한 국가가 재벌과 대기업을 육성하고 노동과 중소기업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조정시장경제 시스템을 활용했다. 그리하여 단기간에 빠른 속도의 경제 성장은 이뤘으나 점차 성장과 분배의 괴리, 불평등의 확대, 삶의 질 악화와 같은 큰 부작용이 초래됐다.

민주화의 기적을 통해 등장한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통령제, 소선거구제, 양당제를 도입했는데 이 제도들은 포용과 대화, 타협과 합의에 따른 정치보다는 승자 독식의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갈등과 대결을 조장했다. 민주화와 함께 경제와 사회의 전 영역에서는 수많은 행위자가 집단 이익을 지키기 위해 광범위한 조직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후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기업가·노동자·직능단체 등 1만5000개에 가까운 비영리 민간단체가 조직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단체는 일부 공익 활동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자기 집단의 단기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전념해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변화들을 종합할 때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기적이 결코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강한 국가·기업·이익집단들이 연합해 경제 성장과 집단 이익의 극대화라는 목표는 달성했을지 모르나 분배·복지와 정치적 대표를 소홀히 하고 수많은 약자 집단을 희생시켜 두 기적의 가치를 훼손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로써 강자와 부자는 더 부강해지고, 약자와 빈자는 더 어려워지게 돼 전 국민의 40~50%(실업자, 비정규직, 자영업, 빈곤노인 등) 정도가 고용과 생활에서 큰 고통을 겪는 결과가 나타나고 말았다. 이것을 볼 때 우리가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적을 이뤘다고 자부심을 느끼는 그 이면에서 한국 사회가 연결 사다리가 사라진 ‘두 국민의 나라’로 분열되지 않았나 하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따라서 정부와 정치권은 억강부약 기조에 따라 국민의 최대 절반에 이르는 약자와 빈자 집단의 고용과 생계를 안정시키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포용국가를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정립하고 국민의 역량 증진, 혁신경제 구축, 사회보장 강화의 세 가지를 핵심 국정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이 토대 위에서 어려운 절반의 국민을 살려내고 나머지 절반의 국민과 굳건한 연대와 통합을 이뤄낼 때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함 있는 기적을 넘어 모든 국민이 지속적으로 공동 번영하는 진정한 제3의 기적이 가능해질 것이다.

성경륭 (농산어촌유토피아특위 위원장·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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