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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코로나 올인’의 그늘


‘비감염성 질환(Non-Communicable Diseases·NCDs)’이란 말이 있다. 흔히 만성 질환으로 알려져 왔는데, 그것보다 더 포괄적 개념이다.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천식 암 같은 만성병은 물론 손상, 중독, 정신질환 영역까지 포함한다. 매년 전 세계 사망의 약 71%(4100만명)가 NCDs로 인해 발생한다. 그래서 보건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예방·관리의 우선 순위가 높다.

2015년 열린 제70차 유엔 총회에서는 2030년까지 NCDs 사망을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정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NCDs로 인한 조기 사망 감소를 위해 흡연, 음주, 소금 섭취, 신체 활동 부족 같은 위험요인 관리를 지원하는 나라별 활동 계획을 개발·보급하고 각국의 노력과 결과를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런데 이에 찬물을 끼얹는 강력한 복병이 등장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이다. 1년 넘게 인류를 위협하고 있는 신종 바이러스 감염병이 NCDs 예방·관리를 위한 국가별 활동을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대부분의 나라가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인력·예산 등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으며 이런 집중은 NCDs 환자들에게 필요한 기본적인 관리와 돌봄 체계의 붕괴로 이어졌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비대면·비접촉 권고는 국가 단위 사업의 위축과 지역사회 참여 활동을 유보 또는 금지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한 전문가에게 “그래도 붕괴까진 아니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WHO가 공식적으로 ‘무너졌다(disrupted)’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 사실 코로나19에 취약한 집단이 바로 고혈압 당뇨 천식 암 등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데, 이들에 대한 관리 소홀은 결국 코로나19 피해를 키우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NCDs 예방·관리를 위해 강조돼 온 금연·금주, 비만 관리, 신체 활동 같은 건강증진사업도 한참 밀려나 있다. 일선 보건소는 코로나19 방역과 백신 접종에 매달리느라 건강 위험요인 예방이나 NCDs 환자 관리에 쏟을 여력이 없다. 대표적 예로 보건소 금연클리닉 이용률은 코로나19 전인 2019년에 비해 올해 상반기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고 4박5일 금연캠프는 아예 중단됐다.

아울러 흡연 규제를 담은 많은 법안들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반면, 담배 규제에 대한 역행적 입법 논의는 활발하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위해(危害)저감’을 표방한 신종담배의 세금을 깎아주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해 금연학계의 분개를 샀다. 이밖에 절주나 금주, 건강식생활 실천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이나 교육도 찾아보기 힘들다. ‘코로나 올인’의 그늘이 짙어지고 있다.

눈앞에 닥친 상황 대처를 위해 취하는 정책이나 사회적 대응이 기존의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과 건강증진을 위해 체계화된 활동 기반을 흔들도록 방치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어렵더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기존에 기획하고 추진하던 정책과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얼마 전 대학에서 사회의학을 가르치는 임민경 교수와 함께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가 현재 상황을 꼬집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몸이 여러 외부 요인으로 위협받을 때 세포는 분열이나 적극적 활동을 멈추고 일종의 ‘죽은 척’을 함으로써 생존을 유지하는데, 그렇다고 영원히 죽은 척으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일시적 멈춤으로 대처할 수 있었던 시기는 이제 끝나가는 것 같다.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지금의 팬데믹 상황을 이겨내고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하려면 감염성, 비감염성 질환 모두를 포괄하는 총체적 예방·관리 체계를 세우고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코로나19 대응이 발등의 불이겠지만, 정부 당국자가 한 번쯤 깊게 새겨봐야 할 것 같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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