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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당신의 전성기는 언제일까요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지난주 ‘아트 부산’ 전시에서 세계적 작가인 알렉스 카츠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근작들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카츠는 1927년생, 호크니는 37년생으로 90대, 8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작업과 전시를 하고 있다. 작품의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서도 시대와 발맞추고 있어 작가의 나이 듦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호크니는 몇 년 전부터 아이패드 페인팅을 선보이고 있다. 2019년 대구시립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각각 열렸던 그들의 개인전은 많은 관람객을 기록했다.

3월에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로즈 와일리의 전시를 봤다. 34년생인 와일리는 고령인 76세 때 신진 작가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유명해졌다. 20대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40대에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긴 무명의 시간 동안에도 그리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70대에 신인상을 받을 수 있었고, 87세에 한국에서 대형 개인전을 열게 된 것이다. 와일리는 여전히 매일 아침 뉴스를 보며 무엇을 그릴까 생각하고, 자유롭게 자기 생각들을 그리고 있다.

얼마 전 잠깐 본 드라마 ‘나빌레라’에는 70대에 용기를 내서 발레를 배워보려는 아버지가 등장한다. 몸에 달라붙는 발레복을 입고 춤을 배우는 아버지를 향해 자식들은 창피하고 위험하다며 반대의 뜻을 전한다. 제발 집에 가만히 좀 계시라고 짜증을 내는 자식의 마음에 아버지는 자유로운 개인이기보다는 희생의 아이콘이자 돌봐야 할 노인이었다. 10년 전쯤, 60대였던 엄마가 운전 실습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지 못한 게 떠올라 미안해졌다. 혼자 운전하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었던 것이다. 엄마의 운전면허증은 여전히 장롱 안에 있다.

47년생으로 우리 엄마와 동갑인 배우 윤여정씨는 1971년 ‘화녀’를 통해 영화에 데뷔했다. 2020년 ‘미나리’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필모그래피에는 90편이 넘는 영화가 적혀 있다. 그녀는 배우로서 활동하는 동안 매년 꾸준히,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더욱 왕성하게, 스크린에 등장했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녀는 열광하는 국민에 비해 담담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상은 운이 좋아서 받은 것이고, 상과 무관하게 언제나 열심히 일했고, 배우로서 젊은 패션과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밀라논나(밀라노 할머니)로 활동하는 장명숙씨는 52년생이다. 그녀는 스스로 노인임을 받아들이며 멋지게 늙어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할머니의 친근함으로 젊은이들에게 지혜와 지식을 나누는 콘셉트의 개인 방송을 통해 80만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하며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오래전에 냈던 책을 재출간하고, 평생 해왔던 패션 관련 일의 전문가로서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됐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현재 853만명을 웃돈다. 2026년에는 전체 인구 중 20%를 넘어설 전망이라고 한다. 이제 40대가 된 나도, 누구도, 예외 없이 노인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든 분들의 활약이 반갑고 고맙다. 윤여정씨나 장명숙씨처럼 나의 일을 오래도록 계속하다가 70대에 전성기가 왔으면 좋겠다는 야심 찬 생각도 해보게 된다. 100세 시대라는데, 가능하다면 호크니나 카츠처럼 80대, 90대의 나이에도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처럼 되기 위해, 나의 것을 쌓아나가면서도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즐길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 70대에 유튜브를 시작할 수 있고, 80대에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나는 왜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의 노력을 응원하기보다는 걱정하고 말렸을까? 꿈과 열정과 사랑과 우정은 청춘의 특권이 아니라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이어지고 확장되는 영역임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겠다. 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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