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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 ‘존버’의 시대

백상진 정치부 기자


비트코인 ‘시즌2’가 끝났는지를 놓고 논쟁이 한창이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종잡을 수 없는 발언과 중국의 가상화폐 규제 움직임으로 8000만원을 넘어섰던 코인 가격은 반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다. 비관론자들은 “거품이 꺼졌다”며 일제히 경고 메시지를 날리지만, 옹호론자들은 차익 실현으로 찾아온 일시적 조정일 뿐 재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논란과는 무관하게 가상화폐에 막차를 탄 2030세대는 여전히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온라인 은어)를 외치고 있다. ‘존버’는 당초 주식시장에서 최고점에 주식을 샀다 낭패를 본 투자자들이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 원금 회복을 할 거라는 강한 믿음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그러다 2017~2018년 비트코인 광풍과 추락 이후엔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가즈아’와 함께 많이 쓰는 말이 됐다. 기다리면 빛을 볼 거라는 주문이었다. 최근에도 가상화폐 폭락에 따른 공포를 이겨내고자 하는 젊은 층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

그간의 학습효과도 한몫했다. 3년 만에 찾아온 가상화폐 ‘불장’은 버티기만 하면 벼랑 끝에 몰렸던 투자도 한 방에 회복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청년들은 24시간 요동치는 가상화폐 그래프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불안감을 호소하면서도 가상화폐가 언젠가 ‘떡상’하기를 기다리며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상태다.

가상화폐 시장에서만 ‘존버’가 발생하는 건 아니다. 현 정부 들어 부동산 시장에서도 세금을 둘러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 달 시행 예정인 양도소득세 중과세와 종합부동산세 인상 등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다주택자 간 기싸움이 팽팽하다. 부동산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일단 버텨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그 결과, 정부의 여러 유인책에도 불구하고 주택 매물은 나오지 않고 있다. 부동산 정책 불신에다 야당의 4·7 재보궐선거 승리 이후 재건축 규제 완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물량이 말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집을 파느니 절세 차원에서 자녀들에게 증여를 하겠다는 이들이 많다. 통계로도 입증된다. 지난해 전국 아파트 증여 건수는 전년 대비 40% 이상 늘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잠시 주춤하더니 최근 다시 상승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수도권 신도시 공급 계획이 담긴 2·4 대책 발표 이후엔 상승률이 완만했지만, 지난달 중순부터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이달 셋째주엔 주간 상승률이 0.10%까지 올라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문재인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이 6억원대 초반에서 11억원대 초반으로 5억원 넘게 올랐는데도 천장이 어딘지 가늠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여권은 양도세와 종부세 규제를 완화할 것인지를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존버’의 시대는 우리 경제가 비정상적인 경로 속에서 방향타를 잡지 못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단면이다. 하지만 이 불안한 상황이 해피엔딩으로 끝날지는 확실치 않다. 대안 부재의 상황 속에 경제 주체들은 일단 버티기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든 2030세대는 극심한 위험성을 알면서도 코인에 투자한다. 이들은 비현실적인 집값 상승을 목격하면서 근로소득으로는 내 집 마련과 중산층 진입이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젠가 찾아올 한 번의 기회를 꿈꾸며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은 가상화폐를 마지막 희망으로 인식하는 셈이다. 부동산 시장에서의 힘겨루기도 단기간에 끝날 사안이 아니다. 정부가 손을 댈수록 집주인들의 불신은 깊어지는 형국이다. 시장은 경직되고, 정부와 집주인들은 평행선만 그리고 있다.

버티기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 팽팽한 긴장감이 오래갈수록 후유증도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경제 주체들의 ‘존버’ 전략을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백상진 정치부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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