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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5월에 쓰는 편지

이재무(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햇살 어지러운 봄날/ 옛집 뜰에 핀 하얀 목련은 엄마가 부르는 노래이지요?/ 공활한 가을 하늘 펄럭이며 나는 저 기러기 엄마가 쓰는 필체이지요?// 성하의 녹음은 엄마의 여전한 농업이시고/ 생전에 못다 운 눈물 저리 눈발로 분, 분, 분 내려서는/ 층, 층, 층 삼동의 들녘 캄캄하게 채우고 있는 거지요?/ 꽃에게서 나는 엄마의 음성을 듣고 새에게서 나는 엄마의 안부를 읽어요”(졸시 ‘엄마에게 쓰는 편지’ 부분)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여름이었다. 밭농사를 짓다가 이른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신 엄니는 뒤꼍에 설치한 가마솥에 보리쌀을 안쳐 밥을 짓다가, 해종일 저수지에서 미역을 감고 막 사립으로 들어서는 나를, 활짝 열어놓은 부엌문 새로 보고는 손짓으로 불러들였다.

니도 명년에는 입학해야니께 이름자 정도는 익혀야 할 게 아녀? 뭘, 벌써 골치 아프게 글자를 익히남요? 핵교 가면 선생님께서 어련히 알아 가르쳐주실 텐디유. 아녀, 그게 아니란 말이여, 미리 배워 나쁠 게 없으니께 하는 소리여, 거기 솥 옆에 있는 부지깽이를 집거라. 그게 니 연필이다. 오늘부터는 임시로다가 엄니가, 니 선상님이니 그런 줄 알거라.

아궁이 밖으로는 연신 불의 혀가 빠져나와 솥의 아랫도리를 핥아대고 있었고,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어둠은 졸졸졸 시나브로 마당으로 고이고 있었다. 아궁이에서 새어나오는 화염이 밀려드는 어둠을 가까스로 밀어내는 곳에 생기는 문짝 크기의 토지(土紙)에 부지깽이를 움켜쥔 엄니가 삐뚤빼뚤 내 이름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엄니가 시키는 대로 부지깽이 연필을 들고 그 글씨들을 흉내 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아궁이에서 흘러나오는 불빛도 시들어가고 그사이 무성하게 번진 어둠이 집 안 구석구석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농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식구들의 두런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니와 나는 무슨 모의라도 꾀한 사람들처럼 의미심장한 웃음을 주고받은 뒤 하던 공부를 작파했다. 그날 이후 노천학교에서의 수업이 계속 진행됐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엄니를 통해 생애 처음으로 문자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엄니는 당시 비록 농사꾼 아내로 살고 있을망정 동네의 여타 아낙들과는 달리 중학교 문턱까지 밟은 이력의 소유자로서 나름 문자 해독에 밝은 편이었다.

내가 오늘날 문단의 말석이나마 차지하고 앉아 변변찮은 말과 글일망정 이것을 수단으로 호구를 연명해 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찍이 엄니가 베푼 이런 음우의 덕이 아니고 무엇이랴. 하지만 애석하게도 엄니는 당신의 장남이 시인 된 줄도 모르고 너무 이른 나이(48세)에 하늘나라의 부름을 받고 내 곁을 떠나셨다.

나는 가끔 엉뚱한 공상에 젖고 한다. 만약 엄니가 지금껏 살아계신다면 내 글의 가장 강력한 애독자와 후원자가 됐을 것이고 목소리에 과장과 호들갑을 실어 동네방네 아들 자랑에 열을 올렸을 것이다. 또한 엄니는 내 글감의 화수분이 돼 무궁무진 글쓰기에 동력을 베풀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은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전개되고 사람 운명이 또한 그러하다. 나는 다만 부재와 결핍과 추억의 대상으로서 엄니를 떠올려 시난고난 근근하게 생을 짓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서 ‘만물은 순환한다’는 동양의 진리, 들뢰즈의 ‘차이를 통한 반복’,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을 빌려 말한다면 내가 엄니와 함께했던 시절은 과거 완료형의 시간 개념이 아닌 현재에도 여전히 작동되는 현재진행형의 그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엄니라는 근원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창조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장자가 말한 ‘천균(天均)’의 이치처럼 엄니의 생과 나의 생은 뫼비우스 띠가 돼 처음과 끝이 맞물린 채 거듭 순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재무(시인·서울디지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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