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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영옥의 컬처 아이] 이건희 미술관, 비수도권에 세워야


문재인 대통령 한마디가 전국을 들쑤셔 놓은 모양새가 됐다. 삼성가가 지난달 말 이건희 컬렉션 국가 기증을 발표한 다음 날,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게 단초가 됐다. 이후 부산을 시발로 대구, 광주, 세종, 수원, 용인, 창원, 진주, 의령, 여수 등 전국 10여곳 지방자치단체가 우리 지역에 그 미술관을 달라며 덤벼들었다.

속도가 전광석화 같아 유력한 후보지인 서울시 산하 기초자치단체는 명함을 내밀 겨를도 없었다. 미술계 일각에서 이참에 ‘국립근대미술관’을 세우자며 건립 장소로 종로구 송현동 부지를 제안하긴 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민간의 아이디어 차원이다. 국립한국문학관 유치전 때 은평구가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에 비하면 서울의 기초자치단체는 지금 너무 조용하다. 문화체육관광부로서는 지방 건립에 관해 아무 논의가 없는 상황에서 유치전이 지역을 중심으로 과열 양상으로 치달아 당혹스럽게 됐다. 장소 선정이 대선 국면을 앞두고 정치 문제로 비화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이냐 비수도권이냐. 유치전이 이런 구도로 나뉜다면 비수도권에 한 표를 보태고 싶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 문제는 심각하다. 과거 정권에서 서울을 키워야 세계적인 한국이 된다는 신자유주의적 국정 철학이 이어지며 지방은 소멸했다. 노무현정부 들어 지방분권을 외치며 행정수도 이전을 꾀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세종시로 낙점되는 선에 그쳤다. 그럼에도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 분권을 위해 ‘말뚝’을 박은 조치로 평가된다.

우리나라 문화시설은 전국 2800여개 가운데 36%가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특히 미술관은 전국 200여개 가운데 50% 이상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지역에서는 블록버스터 전시 하나를 보려면 상경해야 한다. 경제·교육뿐 아니라 문화 향유에 있어서도 지역 격차는 심각하다. 이건희 미술관이 문화 분권을 이루는 강철 말뚝이 되기를 희망한다. 컬렉션이 갖는 위력으로 보건대 그런 정체된 구도에 균열을 낼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

이건희 미술관의 서울 건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관광 효과를 꼽는다. 황희 문체부 장관도 “방한 외국 관광객들을 위한 관광 상품으로 연결되는 것”을 설립 효과로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의 예술의 섬 나오시마는 좋은 콘텐츠가 있다면 관광객들이 배를 타고 가는 불편을 감수해서라도 찾아간다는 걸 보여준다. 외국 관광객이 이건희 미술관 때문에 한국의 서울도 아닌 먼 지방을 찾고, 그 지방 이름까지 기억하는 시대가 온다면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서 실패한 지역 분권을 문화가 이뤄내게 되는 셈이 된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에 뛰어든 일부 지자체의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출생지나 묘소 위치 등 혈연과 지연, 학연을 내세우는 것은 초딩 수준이다. 지역에 가더라도 자격을 갖춘 곳에 가야 한다. 우선 인구와 교육 수준 등에서 자체적인 문화 소비 여력이 있어야 한다. 문화 격차를 해소하고 문화를 통한 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소비 인구가 있어야 한다. 교통 등 접근 면에서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이었으면 한다. 둘째, 비수도권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역차별 받은 지역이 배려됐으면 한다. 정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에서는 지역 배려에서도 쏠림 현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컬렉션의 기증에 미술계가 환호하는 것은 기증 작품을 통해 한국 미술사를 연구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 대학에 미술사학과, 미학과 등 전시 지원 및 연구 인프라를 갖췄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문체부는 내달 15일을 전후해 미술관 건립 예정지를 발표한다. 공모를 통해 자격 심사를 하는 건 어떤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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