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초2까지 매일 책 읽어줘… 르몽드·뉴스위크도 구독”

[인터뷰 사이] 오영석 전 프랑스응용과학원 교수

오영석 박사는 “한국식 교육법과 프랑스식 교육법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교육제도와 환경은 다를 수 있지만 부모의 양육 철학과 방법은 어디에서나 같다고 본다”고 했다. 최현규 기자

“저는 절대로 부모가 자녀를 책임지려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네 길은 네 손으로 열고, 네 눈물도 네 손으로 닦아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부모가 아이의 장래를 책임진다고 했다가 잘못되면 어떡해요. ‘얘야, 미안하다, 한 번뿐인 네 인생을 내가 망치고 말았구나’ 할 건가요.”

여느 한국 부모들과는 사뭇 다른 자녀교육관을 피력한 이는 프랑스 국립응용과학원 교수와 카이스트 초빙교수를 지낸 오영석(73) 박사다. 그는 프랑스 여성과 결혼해 프랑스에서 남매를 낳고 키웠는데 아들 세드리크(한국이름 오영택·39)는 현재 프랑스의 디지털경제부 장관이고 딸 델핀(오수련 36)은 프랑스 하원의원을 거쳐 유엔 세대평등포럼의 사무총장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 박사에게 두 자녀를 프랑스의 젊은 리더로 키운 가정교육 철학에 대해 들었다.

-자녀들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세드리크 장관은 프랑스의 IT와 스타트업을 총괄하고, 델핀 사무총장은 오는 6월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세대평등포럼을 준비하고 있다고요.

“영택이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지금의 여당인 앙마르슈를 함께 창당했어요. 마크롱의 역점사업인 디지털화와 신산업 정책을 책임지고 있죠. 수련이가 주재하는 다음 달 행사에는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이 참석해 여성과 청년의 권리 증진을 주제로 머리를 맞대는 거고요.”

오 박사는 남매를 한국 이름으로 불렀다. 세드리크는 네살과 한살인 두 아들을 뒀는데, 오 박사는 손자들도 자신이 지어준 한국 이름 성식이와 준식이로 불렀다.

-교육 비결이랄까요, 자녀들을 어떻게 키우셨나요.

“초등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어줬어요. 독서는 망루를 쌓는 것과 같아요. 망루가 높을수록 멀리 볼 수 있죠. 대화도 중요합니다. 온 가족이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하면서 각자 하루 이야기를 했어요. 집에 TV를 놓지 않아서 저녁시간을 길게 쓸 수 있었는데, 보드게임을 하거나 나란히 앉아 책을 읽었어요.”

-어떤 책을 읽게 하셨나요.

“수요일 오후엔 온 가족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만화책도 빌리고 역사 사회 과학 소설 가리지 않고 읽었어요. 집에서는 르몽드 신문과 미국의 타임, 뉴스위크를 구독했어요. 내가 읽다가 두면 아이들이 이게 뭘까 들춰보다가 자연스럽게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제는 TV를 없애도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는데요.

“며느리가 한국에서는 몇 살부터 휴대전화를 갖느냐고 놀라더군요. 식당에서 보면 아주 어린 아이한테 휴대폰을 쥐여주던데, 부모는 편하지만 아이는 헛똑똑이가 돼요. 손자 성식이가 뽀로로와 타요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식사 중간에 보여주진 않아요. 저희 집에서는 식탁 예절이 엄격해서 밥을 안 먹거나 밥 가지고 장난치면 밥그릇을 치웠어요. 손자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오 박사네 남매는 프랑스에서 ‘대학 위의 대학’으로 불리는 그랑제콜 출신이다. 그렇다고 모든 걸 알아서 척척 해내는 모범생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항상 1, 2등을 다툰 델핀에 비해 세드리크는 장난을 좋아해 부모가 학교로 불려간 일도 있고, 집중하지 않는 편이어서 성적도 부침이 있었다. 오 박사가 손을 들고 있게 하거나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는데, 세드리크는 한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엄격한 한국식 교육이 아니었으면 장관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프랑스에도 인종에 대한 장벽이 있을 텐데, 자녀들이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나요.

오영석 박사의 아들 세드리크 오(오른쪽)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과 딸 델핀 오 유엔 세대평등포럼 사무총장. 오영석 박사 제공

“영택이가 초등학교 때 ‘신턱’(Chintok)이라고 놀림을 받았어요. 중국인을 비하하는 말이에요. 그래서 ‘그 애들은 프랑스 문화 하나밖에 모르지만 너는 프랑스와 한국 두 개의 문화를 갖고 있어’라고 얘기했더니 괜찮아졌어요. 신턱이라고 부르면 ‘네가 잘못 알고 있는데, 나는 한국인이야’라고 했다더라고요. 자라서는 큰 문제가 안 된 것 같아요. 프랑스를 톨레랑스, 관용의 나라라고 하잖아요. 인종 문제에 대해서도 그렇죠.”

다소 특별할 것 없는 독서와 대화가 교육의 큰 원칙이었다면, 오 박사가 들려준 세세한 이야기 중에는 번득이는 것들이 많았다. ‘위인전은 권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누구처럼 되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 건널 필요는 없다. 일단 도전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다’ ‘키 큰 사람과 악수할 때는 손을 낮게 내밀어라. 그럼 그는 네 손을 잡으려 몸을 낮출 것이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최고라는 생각을 가져라’. 세드리크에게 준 행동 십계명 중에는 ‘절대 싸움에서 물러서지 말되 싸움을 걸지 말아라’ ‘술은 마시되 자제를 잃지 말아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부모가 아이의 앞날을 책임지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박사님이 생각하는 부모의 책임은 어디까지인가요.

“물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도록 자질을 키워주는 건 부모의 책임이죠. 다만 많은 한국 부모들처럼 아이의 진로와 장래를 자신이 결정하려는 건 무책임하다는 거예요. 제가 엔지니어니까 저도 아이들이 이공계로 진학하기를 바랐어요. 하지만 그건 내 희망일 뿐이지 아이들이 따라야 할 의무는 아니라고 했죠. 그래서 둘 다 본인 뜻대로 진학하고 진로를 정했는데, 결국 그 선택이 옳았던 것 같아요.”

-자녀들에게 쓴 편지 중에 ‘너는 내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너는 너 자신으로서 태어난 것이다’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어요.

“부모와 자식은 수평적인 객체예요. 내가 세상에 먼저 태어났기 때문에 더 많은 경험을 쌓은 것뿐이죠. 강하게 얘기하면, 저는 자식을 반려견 키우듯 하는 부모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 눈에 좋아 보이는 대로 시키고 부모가 생각하는 대로 아이를 만들려고 하죠. 반려견한테 뭘 하겠냐고 물어보지 않잖아요. 묻지도 않고 불편한 옷 입히고, 목줄 잡아당기면서 통제하죠. 반려견도 그러면 잘못 키우는 것 아닌가요.”

-부모의 역할 중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보여주는 겁니다. 첫째는 아이가 자기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여러 길을 보여주는 거죠. 책을 많이 읽게 하고 경험을 많이 쌓게 하면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는데, 부모는 그 생각에 부연 설명을 해주는 겁니다. 둘째는 직접 모범을 보이는 겁니다. 부모가 먼저 책을 읽고 부부간에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박사님은 부모님에게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나요.

“홀어머니가 담배공장에서 일하며 삼남매를 키우셨어요. 제가 중학교 때 친구들과 백화점에 갔다가 유리창을 깼어요. 친구들은 다 도망쳤는데 저만 제가 깼다고 말해서 어머니가 한 달 월급 가까운 돈을 변상하셨죠. 그런데도 꾸중하지 않고 정직했으니 잘했다고 하셨어요. 그게 가장 큰 가르침이었어요. 아이들한테도 솔직하게 자신의 행동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전했어요.”

오 박사의 삶도 드라마틱하다. 고려대 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수류탄을 개발했다. 외국 수류탄을 분해해 연구하던 시절이었다. 프랑스에서 미사일 기술을 전수받을 팀원으로 선발돼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당시 프랑스어 강사가 훗날 그의 아내가 됐다. 그러나 외국인과 교제 때문에 보안대에 불려가는 일을 겪고 나서 연구소를 나왔고, 프랑스에서 박사학위를 딴 후 정착했다.

-남매의 성공은 박사님 노력의 결실이기도 한데요.

“아이들이 그렇게 큰 거지, 저는 잘 자랄 수 있게 보조하는 역할을 했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성공했다고 하는데 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해하니까 그게 좋아요. 어떤 직업을 갖든 간에 인류에 공헌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지 않는 좋은 머리는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어요. 아이들도 그 얘기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해요.”

-여전히 한국에서 교육의 목표는 명문대학 진학입니다.

“교육의 목표는 관찰하고 인지하고 분석하고 비평하고 종합해서 행동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 교육에서는 이 과정이 이뤄지지 않아요. 우리는 수능 시험을 하루에 끝내지만 프랑스는 일주일 이상을 봐요. 전부 주관식이고 논술식이에요. 수련이는 논술시험만 4시간을 봤어요. 우리는 수능이 끝나면 쓸모없는 지식을 배우죠.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손해예요?”

오 박사는 인터뷰 내내 한 번도 희생이나 헌신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 그러나 세드리크는 오 박사의 칠순 잔치에서 낭독했다는 글에 ‘아빠의 희생에 감사한다’며 ‘아빠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육해야 할 새로운 세대가 있기 때문’이라고 썼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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